명사칼럼
작성자 한범구
작성일 2011-03-15 (화)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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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문집 제4권 ; 서(序)《경국대전(經國大典)》서문
   예로부터 제왕(帝王)들이 천하 국가를 다스린 것을 보자면, 창업을 한 군주는 경륜(經綸)이 초매(草昧)하여 전고(典故)를 살필 겨를이 없었고, 수성(守成)을 한 군주는 선왕이 이루어 놓은 법도만 지키며 예악(禮樂)을 만드는 일이 없었다.
비록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계책이 주밀하여 실수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삼장(三章)의 법은 규모만 대략 둔 것일 뿐이고, 역사가들이 당(唐)나라는 빈틈없이 모든 제도가 갖추어졌었다고 일컫지만 《육전(六典)》이 만들어진 것은 오히려 중엽에 가서야 가능했다. 하물며 한나라나 당나라만 못한 나라들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삼가 생각건대, 세조께서는 천명을 받아 군주의 자리에 올라 나라를 중흥하였으니 창업과 수성의 공적을 겸하셨다. 문덕(文德)이 빛나고 무위(武威)가 확고하며 예법이 갖추어지고 음악이 흥기하였다. 그런데도 부지런히 훌륭한 정치를 도모하시고 널리 예악의 제도를 정비하셨다.
일찍이 좌우 신하들에게 말씀하기를,

“우리 조종(祖宗)의 깊고 두터운 인택과 크고 아름다운 규범이 실려 있는 법령으로는 《원육전(元六典)》, 《속육전(續六典)》, 《육전등록(六典謄錄)》이 있고, 또 누차 내린 교지(敎旨)도 있으니, 법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관리들이 용렬하고 어리석어 봉행하는 데에 어두우니, 참으로 과조(科條)가 번잡하고 앞뒤로 법 조문이 모순되어 하나로 크게 정해지지 않아서일 뿐이다. 이제 조정하여 증감하고 산정(刪定)하고 회통(會通)하여 만세토록 사용할 수 있는 법을 만들고자 한다.”
하셨다. 이어 영성부원군(寧城府院君) 최항(崔恒), 우의정 김국광(金國光), 서평군(西平君) 한계희(韓繼禧), 우찬성 노사신(盧思愼), 형조 판서 강희맹(姜希孟), 좌참찬 임원준(任元濬), 우참찬 홍응(洪應), 중추부 동지사 성임(成任) 및 서거정에게 명하여, 여러 조목들을 모아 상세히 살펴 취사선택하여 편차를 정해 책을 만들되 번잡하고 쓸데없는 것은 산삭하고 정간(精簡)하기를 힘쓰도록 하고, 그 과정의 모든 조치를 주상의 재결을 받게 하셨다. 또 영순군(永順君) 이부(李溥)와 하성군(河城君) 정현조(鄭顯祖)에게 명하여, 출납을 담당하게 하셨다. 책이 이루어지자 여섯 권으로 만들어서 올리니, 《경국대전》이라는 이름을 내리셨다.
형전(刑典)과 호전(戶典)은 이미 반포하여 시행하였고, 나머지 네 개의 법전은 미처 교정을 보지 못했는데, 주상께서 갑자기 승하하셨다. 지금의 성상께서 선왕의 뜻을 이어 드디어 일을 마치고, 중외에 반포하셨다.
신이 삼가 생각건대, 천지의 광대함은 모든 만물을 덮어 주고 실어 주며 사시의 운행함은 모든 만물을 생육하며, 성인이 예악을 제작함은 모든 만물이 기쁘게 그것을 보게 된다. 그러니 참으로 성인이 예악을 제작함이 천지와 같고 사시와 같은 것이다.
예로부터 예악의 제작이 성대하기로는 주나라만 한 나라가 없었는데, 〈주관(周官)〉에 육경(六卿)을 천지와 사시에 배치하였으니, 육경의 직책은 하나라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우리 태조 강헌대왕께서 하늘의 뜻에 부응하고 인심에 순응하여 나라를 세우고 기강을 확립하시니 규모가 원대하였다. 세 분 군주가 서로 이으며 안정된 계책을 사왕(嗣王)에게 전하시어, 제도가 밝게 갖추어졌다. 세조께서는 신령한 생각과 깊은 지혜가 천고에 탁월하셨다. 총명하신 전하께서는 이 법을 잘 따르고 잘 봉행하여 금과옥조로 여기고 옥돌에 새겨 영원히 광채를 드리우시니, 아름답고 성대한 일이다.
그 육전(六典)이라 한 것은 곧 주나라의 육경(六卿)이다. 그 훌륭한 법과 아름다운 뜻은 곧 주나라의 〈관저(關雎)〉와 〈인지(麟趾)〉의 뜻이다. 문(文)과 질(質)이 적절히 조화되어 환히 빛나니, 누가 《경국대전》을 만든 것이 〈주관〉과 《주례》와 서로 표리가 되지 않는다고 하겠는가. 천지와 사시에 견주어도 어그러짐이 없고 이전의 성인에 상고해도 오류가 없으니, 백세토록 성인을 기다려도 의혹하지 아니할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지금부터 자자손손 이어서 훌륭한 군주가 나와 모두들 이 《경국대전》을 준수하며 어기지도 않고 잊지도 않는다면, 우리 국가의 문명(文明)의 정치가 어찌 오직 주나라보다 융성할 뿐이겠는가. 억년 만년 무궁한 왕업이 응당 더욱 장구하게 이어질 것이다.
기축년(1469, 예종1) 8월.

[주D-001]삼장(三章)의 법 :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처음 관중(關中)에 들어갔을 때에 진(秦)나라의 가혹한 법령을 모두 폐지하고 세운 세 종류의 법을 말한다. 그 내용에,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인다. 사람을 다치게 한 자와 도둑질한 자는 처벌한다.” 하였다. 통상 약법삼장(約法三章)이라 한다.
[주D-002]육전(六典) : 당나라 현종 때에 만든 법전인 《당육전(唐六典)》 30권을 말한다.
[주D-003]영순군(永順君) 이부(李溥) : 1444~1470. 본관은 전주, 자는 준지(俊之), 호는 명신당(明新堂)이며, 시호는 공소(恭昭)이다. 세종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아들이다. 《성종실록》 1년 4월 1일 기사에 졸기가 실려 있다.
[주D-004]하성군(河城君) 정현조(鄭顯祖) : 본관은 하동(河東), 시호는 편정(褊玎)이다. 정인지(鄭麟趾)의 아들이다. 1455년(세조1)에 세조의 딸 의숙공주(懿淑公主)와 혼인하여 하성위(河城尉)에 봉해졌고, 1467년(세조13)에 하성군이 되었다. 1471년(성종2)에 좌리 공신(佐理功臣)에 책록되고 하성부원군이 되었다.
[주D-005]주관(周官)에 …… 배치하였으니 : 《서경》 〈주관〉에 의하면, 육경(六卿)의 분직(分職)이 천관경(天官卿) 총재(冢宰), 지관경(地官卿) 사도(司徒), 춘관경(春官卿) 종백(宗伯), 하관경(夏官卿) 사마(司馬), 추관경(秋官卿) 사구(司寇), 동관경(冬官卿) 사공(司空)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D-006]세 분 군주 : 정종, 태종, 세종을 말한다.
[주D-007]어기지도 …… 않는다면 : 《시경》 〈가락(假樂)〉에, “어기지도 않고 잊지도 않으며 옛 전장을 따르는도다.[不愆不忘 率由舊章]”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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