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편찬간행사
작성자 종친회
작성일 2010-04-05 (월)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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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六校丁卯大同譜(육교 정미 대동보)


 

서기 1993년 계유(癸酉)년 12월 발간.


대동보 

 


내용(종회자료실 정선공파보와동일) 사진클릭


序文(6교 정묘대동보 서문)  


 

국가에서는 국사(國史)를 편찬(編纂)하여 치란(治亂)과 흥체(興替)를 밝혀서 후세에 전함으로써 위정자(爲政者)의 귀감(龜鑑)이 되게 하는 것이요.

각족성(各族姓)에서는 족보를 편찬하여 소목(昭穆)과 세계(世系)를 밝혀서 이를 후손들에게 전함으로서 숭조목종(崇祖睦宗)의 사상을 고취(鼓吹)시키고자하는 것이니 이는 그 목적하는 바가 대체로 동일(同一)하여 인간사회의 필요 불가결(不可缺)의 요소라 하겠다.

국가에서 선정을 하면 국기가 공고(鞏固)해지고 사직(社稷)이 융성(隆盛)해지는 것이요 족성(族姓)에서 적선수인(積善樹仁)하면 문운(門運)이 창성하여 후승(後承)이 (繁衍)함은 만고(萬古)의 상리(常理)인 것이다.

우리 청주한씨는 기성(箕聖)이후로 유구(悠久)삼천여년동안 석보대덕(碩輔大德)과 명현군자(名賢君子)가 혁세상승(奕世相承)하여 동방대성(東方大姓)을 이루었으니 이 어찌 원원유장(源遠流長)하고 근고지무(根固枝茂)의 진리가 아니겠는가.

시조태위부군(始祖太尉府君) 이후 천유여년(千有餘年)에 후손이 번창하여 많은 종파로 나누어지니 각문중의 파보편찬은 불가승수(不可勝數)이나 대동보로서는 광해9년 정사초간보(丁巳初刊=1617)가 간행되었으며 이어서 갑신재교(甲申再校) 무진3교(戊辰3校) 기유4교(己酉4校) 및 경신‧갑자 5교(庚申‧甲子 5校)를 거쳐 금반(今般) 정묘제6교대동보(丁卯第6校大同譜)로 이어진 것이니 이는 실로 우금(于今) 370여 년간에 이루어진 한문(韓門)의 대역사인 것이다. 연이나 경신보(庚申譜=1920년 간행) 일부 소목(昭穆)의 오록(誤錄)으로 반질즉시(頒帙卽時) 종의(宗議)가 준발(峻發)하여 그 정정(訂正)으로 4년만에 갑자보(甲子譜)를 편찬하여 이를 교환해주고 회수한 경신보를 영구폐지한 사실을 추상(推想)해 볼 때 당시의 사안(事案)이 얼마나 중차대(重且大)했던가를 우리는 짐작하고 남음이 있는 것이다.

이후 70여 년 동안 사회풍조와 생활 상태는 급진적으로 변천되어 우리 한문(韓門)의 자제들도 과거(過去) 집성촌(集姓村)을 떠나 경향각지로 분산 이주하여 부자와 형제가 각분(各分) 동서(東西)하게 되니 소중한 대동보를 모신 종원(宗員)의 수는 희소(稀少)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신생후승(新生後承)의 번연(繁衍)으로 자질손증(子侄孫曾)의 누보(漏譜)됨이 불소(不少)함으로 거족적(擧族的)인 소명에 의해서 1986년 말에 제6교대동족보 편찬이 발의되었던 것이다. 전임 건수(建洙) 위원장이 사임을 하게 되니 그 후임에 불초(不肖) 양명(陽命)을 요청하기에 본인은 비재천식(菲才淺識)이라 감당할 수 없다고 누누(屢屢)이 고사(固辭)하였다. 그러나 다수 종원들의 권청(勸請)으로 부득이 수락(受諾)을 하게 되니 실로 시위소찬(尸位素餐)에 불과하였는데 전국 종친들의 봉선유후(奉先裕後)의 정성으로 3만6천여 쪽에 달하는 방대(尨大)한 수단(收單)을 5년여 만에 정서(精書)를 마치고 교정작업을 거쳐서 인쇄 제본을 끝내니 상세편(上世篇)에다 각파손록(各派孫錄) 23권을 합하면 대동보(大同譜)가 되는 것이요. 또 상세편에다 자파손록(自派孫錄)만을 합하면 파보(派譜)가 되는 것이다.

이제 전 종중의 노고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이 소중한 대동족보를 인쇄하여 전국종친들이 가봉호장(家奉戶藏)케 되었으니 이는 우리 청주한문(淸州韓門)의 역사적인 대성사(大盛事)라 아니할 수 없다.

관수경독(盥水擎讀)하면 조종(祖宗)의 세차(世次)와 후승(後承)의 파분(派分)이 질서정연하여 열연(悅然)히 우리 종족(宗族)들이 한집(一堂)에 회합(會合)한 화수회(花樹會)와 같아서 소동파(蘇東波)의 관오보즉효제지심유연생(觀吾譜則孝悌之心油然生)이라는 구절이 새삼 실감이 난다. 예기(禮記)에 인도재어친친(人道在於親親)이라 하였으며 시전(詩傳)에 율수궐덕무첨이조(聿修厥德無忝爾祖)라 하였으니 우리 모두 덕을 닦고 행실을 가다듬어서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선조들의 거룩한 명절(名節)을 더럽히지 말고 종족간(宗族間)에 화목하기를 기원(冀願)하면서 위와 같이 서사(序詞)하노라.


 

단기 4326년(1993) 12월   일

제6교 대동족보 편찬위원회 위원장 양명(陽命) 근식(謹識)


 


 

刊行辭(제6교 정묘대동보 간행사)


 

대저 천지간(天地間)에 만물(萬物)은 모두 근원이 있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생성유래(生成由來)를 쫓아 살피고 그를 바탕으로 보다 발전하는 앞날을 개척하고자 힘쓰는 것이 인간의 공통된 정신적 욕구라 할 것이다. 이로서 기록으로 이어지는 것이 크게는 나라의 국사(國史)요 작게는 한 가문(家門)의 족보로서 국사 없는 나라가 없고 족보 없는 집안이 있을 수 없다. 한 나라에 역사가 있음으로 해서 선인(先人)들의 정신적 문화적 유산이 보존됨과 아울러 한 민족의 얼이 영구불멸(永久不滅) 할 것이요 한 집안의 족보가 있어서 조선(祖先)을 경모숭봉(敬慕崇奉)하는 인륜도덕(人倫道德)의 바탕아래 한 문중(門中)의 혈통이 자자손손(子子孫孫) 계승되는 것이다. 그러나 물질문명이 급격히 고조되고 세계가 1일 여행권으로 발달하여 자칫 민족적인 역사의식(歷史意識)내지 씨족적 혈통관념이 점차 해이해져서 망본(亡本)의 우(愚)를 우려하는바 이에 선세지훈(先世之訓)을 받들어 경조사상(敬祖思想)을 일깨우고 효제지심(孝悌之心)을 배양하며 돈종목친(敦宗睦親)의 양식(良識)을 고취(鼓吹)하여 나아가서는 국가사회의 미풍양속을 진기(振起)함에 도움 되기를 기망(企望)하면서 보사(譜事)에 임(臨)하는 것이다.

우리 청주한씨의 대동족보는 조선조 광해9년 정사(丁巳=단기3950, 서기 1617)에 처음으로 간행되었고 갑신(甲申=1704)에 재교(再校), 무진(戊辰=1748)에 3교하였으며, 기유(己酉=1789)에 4교하고 경신(庚申=1920)에 5교하였으나 폐간(廢刊)의 불행을 겪게 되어 갑자(甲子=1924)에 보정(補正) 5교하였다. 따라서 한성(韓姓)의 유래와 파계(派系)에 대한 족보의 시종경과(始終經過)가 선세서문(先世序文)에 명명소재(明明昭載)되었다.

선례(先例)에 따라 구록(舊錄)을 등초(謄抄) 승계(承繼)하고 8역(域)에 산거(散居)하는 각파의 보단(譜單)을 수집(收輯)하여 당해문중(當該門中)의 고열(考閱)과 교정(校正)을 거쳐 정초지계(正草之計)하였으나 소루(疏漏)함을 면키에는 불급(不及)이다. 시조하(始祖下) 11세(世) 서제공(恕齊公) 휘천(諱蕆)은 초간보(初刊譜)이래 4교 기유보(己酉譜)까지 무후(无后)로서 경신입록(庚申入錄)의 계승소목(繼承昭穆)이 모록(冒錄)이라 하여 급기야(及其也) 4년 후 갑자보정(甲子補正) 5교보(五校譜)를 간행하기에 이르렀고 경신보(庚申譜) 영위폐지운운(永爲廢止云云)의 선록(先錄)을 회억(回憶)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조실록(李朝實錄=조선왕조실록) 태종3년 5월조에 한천(韓蕆)은 거부이무사운운(巨富而無嗣云云)의 실록으로서 고증(考證)하면 전후실사(前後實史)를 반증(反證)하는 적확지증(的確之證)이 없는 한 선세(先世) 유록(遺錄)을 승전(承傳)함이 마땅하다는 종의(宗議)로 맺어진 바를 소명(昭明)하는 바이다.

다만 실상(實相)을 첨기(添記)코자 하는 소이(所以)는 시원(始源)은 알 수 없으되 제주문중(濟州門中)에서 서제공(恕齊公)의 추모단(追慕壇)을 세워 향화전례(香火奠禮)를 하고 있음이니 내력(來歷)을 밝혀(2년여에 걸친 종의로도 결론을 얻지 못했음) 금차(今次) 6교보 동참(同參)의 기쁨을 함께하지 못함이다. 이는 분명한 사실에 이어지는 사실고증불급(事實考證不及)에서 비롯하였음이며 우리가 바르게 보고 바르게 알고 바르게 전하자는 뜻은 선인들의 가르침과 전해주심을 그릇되게 하지 않으려함이요 나아가 후인들에게 바르게 가르치고 옳게 전승시키려 함이니 금차오한(今次吾韓) 제6교대동족보(第6校大同族譜)를 간행하면서 경신‧갑자보의 정신을 교훈 삼으려함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이다.

5교갑자보 이후 70여년 만에 6교대동보가 편찬되는 시점에서 한(恨)을 삼키며 감당(堪當)해야 되는 어려움이 더했음은 지난 70여 성상(星霜)을 겪는 사이 우리는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이 강탈(强奪)되고 성명(姓名)마저 창씨개명(創氏改名=本姓名을 고수한 이도 많음)이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유린(蹂躪)을 당하였으며 8.15광복(光復)으로 국권(國權)은 찾았으나 혼란한 과도기를 면키도 전에 6.25남침은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으로 양분된 국토에서 부모 형제 부부가 남북으로 이산(離散)하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 이와 같은 민족적 수난을 꿈엔들 예기(豫期)하였으리요. 온 국토가 초토화(焦土化)되어 구명도생(救命徒生)이 초미지급(焦眉之急)이요 국토재건이 당면한 명제(命題)이며 경제회생만이 연명(延命)의 길일진대 나의 선계(先系)가 누구이고 또 그분이 무엇을 하였으며 어떻게 이어져 내려왔는가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음은 누구나 겪은 상황이다. 이와 같이 외침(外侵)과 내우(內憂)의 격랑 속에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文化遺産=족보)이 있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온 세대가 오늘의 기성층(旣成層)이다. 그러한 연유로 해서 모른다는 것이 죄 일수는 없으되 그러나 모른다는 유산을 후세에 남겨줌이 마땅하다는 당위(當爲)는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병인(丙寅=1986)년말에 대동족보 편찬을 발의(發議)하여 익년(翌年) 정묘(丁卯) 계하(季夏)에 종의(宗議)로서 확정하고 이래 7년여의 오랜 시일을 거치는 동안 무수한 선세 사료(先世 史料)를 근기(根基)로 탐구(探究)하고 상호보정(相互補正)하면서 유루(遺漏)없이 등록(謄錄)하려는 성의(誠意)를 기울여 왔다. 그러나 난세(亂世)를 겪는 사이 중간 실계(失系)하여 후승계목(後承系目)을 정립(定立)치 못하는 예가 불소(不少)하였음도 심히 아쉬웠던 사안(事案)이다. 지극히 다행한 일은 관북(關北=함경남북도)에 집성세거(集姓世居)한 예빈윤공(禮賓尹公=諱連)파와 한양위관(漢陽爲貫)한 문절공(文節公=諱宗愈)파 그리고 금계위관(錦溪爲貫)한 금계군(錦溪君) 휘교(諱皦) 후손이 청한대보(淸韓大譜)에 상재합보(上梓合譜)한 경사이다. 이로서 다소의 아쉬움은 있으나 명실공(名實共)히 시조하(始祖下) 제종(諸宗)이 합일수보(合一修譜)하여 과시(果是) 목족지계(睦族之計)를 성취하였다고 감히 자위(自慰)하여 보는 것이다.

이는 일찍이 정부자(程夫子)의 겨레를 결속(結束)케 하고 풍속을 두텁게 한다는 교훈에 등지지 않을 것이니 끊임없이 고루 화목(和睦)하고 서로 돕고 깨우쳐 우의를 돈독히 하면 이것이 대동족보(大同族譜)의 큰 뜻이 아니겠는가.

수보과정(修譜過程)에서 불피풍우(不避風雨)하고 제반(諸般) 애로(隘路)를 극복하며 수단(收單)에 진력하신 각 문중 유사첨현(有司僉賢)에게 돈수심사(頓首深謝)하고 아울러 선세의 숭고하신 수인정신(樹仁精神)을 바탕으로 경조돈종(敬祖敦宗)하여 한성(韓姓) 70만이 무궁(無窮)하게 번륭(繁隆)하기를 기원하면서 과문(寡問)하고 천학(淺學)한 비재(菲才)가 보역(譜役)을 주간(主幹)하고 감이(敢而) 사문지기(辭文之記)하니 공구(恐懼)한 심회(心懷) 불금(不禁)이나 전후(前後) 전말(顚末)의 기술(記述)이라 혜찰(惠察)하시기를 바랄 따름이다.

총 3만6천여면(面) 24책에 이르는 성사(聖事)를 필역(畢役)하기까지 진심갈력(盡心竭力) 현로(賢勞)하신 임원제위(任員諸位)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시종협로지역(始終協勞之役)하신 철희(喆熙) 부유사(副有司), 갑수(甲洙) 상욱(相昱) 상범(相範) 유사(有司)에게 각별히 후위(厚慰)를 드린다.

끝으로 보편집상(譜編輯上) 회모경선(懷慕敬先)에 혹유(或有) 소루(疏漏)일까 한출첨배(汗出沾背) 송구만천(悚懼萬千)이나 후일 속수현종(續修賢宗)의 질정(叱正)이 있기를 간촉(懇囑)하면서 간행사에 가름하는 바이다.


 

단기 4326년 계유(癸酉) 지월(至月=12월) 회일(晦日=그믐)

도유사(都有司) 문양공후(文襄公后) 익수(益洙) 근식(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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