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시 대종(大鍾)을 주조 문정공(諱 繼禧)이 지은 명(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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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범구 작성일11-01-06 14:53 조회1,623회 댓글0건본문
임하필기 [ 林下筆記 ]
대종(大鍾)
태조 3년(1394)에 한양(漢陽)에 도읍을 정하고 을해년(1395, 태조4)에 큰 종을 만들어서 네거리 에 종각(鍾閣)을 짓고 이를 건 다음 아침과 저녁으로 종을 쳐서 사람들이 일어나고 잠자리에 들 시간을 정확하게 알려 주었다.
권근(權近)이 여기에 명(銘)을 짓기를,
이 종을 만든 것은 / 乃鑄厥鍾(내주궐종)
아침과 새벽을 알리기 위함이라 / 乃聲晨昏(내성신혼)
나의 공과 나의 업적을 / 我功我烈(아공아열)
여기에 써서 새겼다네 / 是勒是鐫(시륵시전)
신도를 보호하여 / 鎭于神都(진우신도)
천년만년토록 전해 가리라 / 於千萬年(어천만년)
하였다.
태종(太宗)은 궁문(宮門)에 종을 걸어 놓고 조회하는 시간을 엄수토록 하였는데, 변계량(卞季良)이 여기에 명을 짓기를,
아침저녁 시간을 지킴이 / 有嚴晨夜(유엄신야)
종이 걸려 있기 때문이라네 / 維鍾之懸(유종지현)
백관들은 직무에 충실하여 / 百司效職(백사효직)
실수가 결코 없어야 하리 / 罔敢或愆(망감혹건)
하였다.
세조 2년(1456)에 사정전(思政殿) 앞에 종을 설치하였다가, 신숙주(申叔舟)가 명을 지어서 광화문(光化門) 밖에 설치해 두었는데, 영종 무진년(1748, 영조24)에 종각을 건립하였으나 뒤에 파손되어 사용하지 못하였다. 세조 7년(1461)에 종을 주조해서 한계희(韓繼禧)가 명을 짓고 흥인문(興仁門) 안에 두었는데, 영종 무진년에 종각을 건립하였다. 지금은 이것이 광화문(光化門) 문루(門樓)에 걸려 있다.
□ 註 ; 현재는 덕수궁(德壽宮) 종각(鐘閣)에 걸려있다.
◎ 번역 :한국고전번역원 번역
대종(大鍾)
태조 3년(1394)에 한양(漢陽)에 도읍을 정하고 을해년(1395, 태조4)에 큰 종을 만들어서 네거리 에 종각(鍾閣)을 짓고 이를 건 다음 아침과 저녁으로 종을 쳐서 사람들이 일어나고 잠자리에 들 시간을 정확하게 알려 주었다.
권근(權近)이 여기에 명(銘)을 짓기를,
이 종을 만든 것은 / 乃鑄厥鍾(내주궐종)
아침과 새벽을 알리기 위함이라 / 乃聲晨昏(내성신혼)
나의 공과 나의 업적을 / 我功我烈(아공아열)
여기에 써서 새겼다네 / 是勒是鐫(시륵시전)
신도를 보호하여 / 鎭于神都(진우신도)
천년만년토록 전해 가리라 / 於千萬年(어천만년)
하였다.
태종(太宗)은 궁문(宮門)에 종을 걸어 놓고 조회하는 시간을 엄수토록 하였는데, 변계량(卞季良)이 여기에 명을 짓기를,
아침저녁 시간을 지킴이 / 有嚴晨夜(유엄신야)
종이 걸려 있기 때문이라네 / 維鍾之懸(유종지현)
백관들은 직무에 충실하여 / 百司效職(백사효직)
실수가 결코 없어야 하리 / 罔敢或愆(망감혹건)
하였다.
세조 2년(1456)에 사정전(思政殿) 앞에 종을 설치하였다가, 신숙주(申叔舟)가 명을 지어서 광화문(光化門) 밖에 설치해 두었는데, 영종 무진년(1748, 영조24)에 종각을 건립하였으나 뒤에 파손되어 사용하지 못하였다. 세조 7년(1461)에 종을 주조해서 한계희(韓繼禧)가 명을 짓고 흥인문(興仁門) 안에 두었는데, 영종 무진년에 종각을 건립하였다. 지금은 이것이 광화문(光化門) 문루(門樓)에 걸려 있다.
□ 註 ; 현재는 덕수궁(德壽宮) 종각(鐘閣)에 걸려있다.
◎ 번역 :한국고전번역원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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