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장헌얼수련회 우수리포트(한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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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이사 작성일22-05-16 10:03 조회900회 댓글0건본문
장헌얼 수련대회 교육 리포트
한형서 서울여자대학교 1학년 여
1. 나는 누구인가?
한씨의 연원은 고조선 이전부터 근원이 비롯되었다. 삼국을 통일할 무렵부터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공훈을 세운 인물들이 속출함으로써 삼한의 갑족이라 불렸다. 우리 한씨가 한반도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기자조선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기자조선 이후 마한의 원왕이 삼형제를 두었는데 우성, 우량, 우평이며 우성은 북원 선우씨, 우량은 상당 한씨로 청주가 본관이며, 우평은 덕양 기씨로 행주가 본관이다. 한우량으로부터 31세가 되는 지원에게는 만, 간, 란, 영의 4형제가 있었는데 만, 간, 영을 중국으로 돌아갔고 셋째이신 분이 바로 우리의 시조되시는 태위공 란이 되시다. 고려 태조 왕건과 함께 출정하여 백제와 신라를 평정하는데 공을 세웠고 사후 위양이라는 시호가 하사되었다.
저 한형서는 한씨 시조로부터 31대손 장헌공 할아버지로 부터는 14대손이며 장헌공의 셋째 아드님이신 단천공 치겸의 자손입니다.
저를 낳아 주신 부모님은 지금의 저를 있게 만든 매우 감사한 분들입니다. 밝고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항상 도와주시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도덕적 판단을 하도록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언제나 저를 사랑하시는 것이 느껴지기에 힘든 일이 있어도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에 다시 기운을 내고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제가 받은 사랑만큼만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장점은 책임감이 있다는 점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기에 소홀히 일을 하고 넘어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작은 평가라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저 자신의 역량을 모두 사용하는 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하는 일들이 나타낸 결과가 저에 대한 평가고 저를 나타내기에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누군가에겐 저의 첫인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합니다. 위기가 닥쳤을 시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제가 맡은 이상 최선을 다합니다. 이런 모습을 좋게 봐준 사람들이 제 곁에 있고 그렇기에 다른 좋은 인연들로 연결되기도 했습니다.
장래의 목표는 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종이 재질, 표지, 글의 여백들이 어우러진 책 그 자체를 좋아하기에 책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책을 고를 때 고르는 기준에 내용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요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요소들을 부각시켜 좋은 내용임에도 빛을 받지 못했던 책들을 알리고 싶습니다. 또한 외국서적을 한국에 들여와 국내에 소개하고 싶습니다. 책은 그 나라의 문화를 담고 있는 중요 자원이기에 이를 국내에 들여온다면 문화적 교류에도 한걸음 나아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책에 대한 많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책에 대해 공부하고 장단점을 구분하여 좋은 책이라는 저의 기준점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외국서적을 국내에 소개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문화, 사회,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이기에 이에 대해 배우고 이해하여 국내 사람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낮은 장벽을 만들고 싶습니다.
2. 장헌공 할아버지에 대하여 기술하시오.
장헌공의 휘는 효순 자는 면숙, 호는 월탄으로 조선조의 문신이며, 시호는 장헌이다. 어려서부터 체격과 기질이 특별하여 생부께서 큰 인물이 되실 것을 예견하셨다.
1557년 15세 때에 서소문동에서 이응창으로부터 글을 배우셨고, 1560년 윤홍중에게 한유의 글을 배우고 이듬해 19세 때에 찬성 김안국의 아들로 사학에 정통한 김여부에게서 통감을 배우셨으며 1562년 20세 때에는 정주학에 능통한 도사 한윤명과 그의 동생 윤종씨를 찾아가서 소학과 근사록을 읽으셨다. 1565년 23세 때에 김근종을 찾아가 대학을 배우고 1568년 강원향시에서 생원이 되셨다. 1576년에 문과의 병학에 급제하였으며 검열 수찬을 거쳐 1589년 영해부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영해전투에서 승리하고 행정체계를 복구하였다. 그 공로로 경상좌도 관찰사에 특진, 순찰사를 겸임하셨다. 군량미 조달에 공을 세웠고, 병조참판을 거쳐 1596년 경상 전라 충청도 체찰부사가 되었다. 같은 해 한산도 무과의 시관이 되고 이순신이 천거하는 무장들을 발탁했으며 이듬해 지충추부사가 되셨다.
이조판서에 오르고, 평안도 관찰사 판중추부사 등을 거쳐 우찬성이 되었으며, 이어 판동령부사를 지내고 이조판서에 재임되었다.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올랐으며, 서흥부원군에 봉해지셨다. 이이첨 등이 인목대비의 삭호를 주청한 후 1618년 폐모를 시키자 관직을 사직하고, 판중추부사로 입적하시니 향년 79세셨다.
성품이 관대하고 후덕하며 사려가 깊으셨고 경학 또한 심오한 경지에 이르고 병법에도 밝으셨다. 초배 순흥 안씨에게서는 4남 2녀를 두시고 재배 진주 강씨에게서는 3남 2녀를 두시니 모두 7남 4녀가 되신다.
장헌공 휘 효순의 업적으로 ‘신기비결’의 저술을 꼽을 수 있는데 당시의 화약 신무기를 총망라하는 저술을 통해 화약병기의 제조법 및 사용 방법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전술의 개발과 관련하여 진서도 편찬함으로써 새로운 무기체계에 걸맞은 작전 방략을 모색하는 등 임진왜란과 광해군대를 대표하는 군사과학자이자 전략가라고 할 수 있다.
3. 우리나라의 전통예절인 절의 의미와 종류에 대해서 기술하시오.
절이란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공경하는 뜻을 나타내는 동작으로서 행동 예절의 기본이다. 절을 웃어른이 아랫사람에게 답배하기도 한다. 이는 비록 아랫사람이라고 그를 존중하는 표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절의 예절에는 절을 하는 예절과 절을 받는 예절이 있다.
절을 하는 대상에 따른 구분으로는 큰절, 평절, 반절로 나뉜다. 큰절(계수배)은 일방적으로 공경을 드려야 하는 대상에 대해서 하는 절. 절을 받는 사람은 답배를 하지 않아도 된다. 폐백이나 조부모와 부모의 수연 때 드린다. 평절(돈수배)은 서로 공경해 맞절을 하는 경우이며, 같은 또래의 사람끼리 또는 윗사람에게 문안이나 세배를 드릴 때 한다. 반절(공수배)은 평절을 받는 사람이 절하는 사람을 존중해 답배하는 절이며 가까운 친족이 아닌 성년자의 절에는 반절로 답배한다.
횟수에 따른 구분으로는 단배, 재배, 사배가 있다. 단배는 한 번만 하는 절이며 어른에게 평상시 보통 하는 절이다. 재배는 두 번 하는 절이며 죽은 사람의 영전이나 차례, 제사를 지낼 때 하는 절이다. 사배는 네 번 하는 절이며 옛날 왕, 성균관 향교 등에서 올렸던 절이다.
절은 두 손을 모아 방바닥에 대고 무릎을 꿇어 고개를 숙여하는 인사하는 앉은 절이다. 앉은 절의 기본예절로 첫째, 절을 할 수 없는 장소에서 상대를 만났을 때에는 절을 하지 않고 경례를 대신한다. 둘째, 절을 받으실 어른에게 “앉으세요” “절 받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어른에게 명령하는 것이므로 실례이다. “절 올리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옳은 예절이다.
셋째, 편찮아서 누워계신 분에게는 절을 하지 않는다. 절을 받으실 분이 받을 자세가 되어 있을 때 절을 한다. 넷째, 방안에서 인사를 할 때 어른이 나중에 들어오시는 경우 반드시 자리에서 일어서서 맞이해야 하며 어른이 앉으신 후에 절을 한다. 다섯째, 평상시에는 절을 한번만 하지만 문상이나 성묘, 제사, 차례, 결혼식 후 폐백을 드릴 때와 같이 의식 행사에서는 재배(두 번)를 한다.
4. 소감 및 건의사항
내 조상이신 장헌공 할아버지의 일대기를 알 수 있었고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의 뿌리에 대해 배우면서 나를 다시끔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고 앞으로의 미래까지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형서 서울여자대학교 1학년 여
1. 나는 누구인가?
한씨의 연원은 고조선 이전부터 근원이 비롯되었다. 삼국을 통일할 무렵부터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공훈을 세운 인물들이 속출함으로써 삼한의 갑족이라 불렸다. 우리 한씨가 한반도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기자조선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기자조선 이후 마한의 원왕이 삼형제를 두었는데 우성, 우량, 우평이며 우성은 북원 선우씨, 우량은 상당 한씨로 청주가 본관이며, 우평은 덕양 기씨로 행주가 본관이다. 한우량으로부터 31세가 되는 지원에게는 만, 간, 란, 영의 4형제가 있었는데 만, 간, 영을 중국으로 돌아갔고 셋째이신 분이 바로 우리의 시조되시는 태위공 란이 되시다. 고려 태조 왕건과 함께 출정하여 백제와 신라를 평정하는데 공을 세웠고 사후 위양이라는 시호가 하사되었다.
저 한형서는 한씨 시조로부터 31대손 장헌공 할아버지로 부터는 14대손이며 장헌공의 셋째 아드님이신 단천공 치겸의 자손입니다.
저를 낳아 주신 부모님은 지금의 저를 있게 만든 매우 감사한 분들입니다. 밝고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항상 도와주시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도덕적 판단을 하도록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언제나 저를 사랑하시는 것이 느껴지기에 힘든 일이 있어도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에 다시 기운을 내고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제가 받은 사랑만큼만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장점은 책임감이 있다는 점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기에 소홀히 일을 하고 넘어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작은 평가라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저 자신의 역량을 모두 사용하는 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하는 일들이 나타낸 결과가 저에 대한 평가고 저를 나타내기에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누군가에겐 저의 첫인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합니다. 위기가 닥쳤을 시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제가 맡은 이상 최선을 다합니다. 이런 모습을 좋게 봐준 사람들이 제 곁에 있고 그렇기에 다른 좋은 인연들로 연결되기도 했습니다.
장래의 목표는 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종이 재질, 표지, 글의 여백들이 어우러진 책 그 자체를 좋아하기에 책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책을 고를 때 고르는 기준에 내용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요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요소들을 부각시켜 좋은 내용임에도 빛을 받지 못했던 책들을 알리고 싶습니다. 또한 외국서적을 한국에 들여와 국내에 소개하고 싶습니다. 책은 그 나라의 문화를 담고 있는 중요 자원이기에 이를 국내에 들여온다면 문화적 교류에도 한걸음 나아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책에 대한 많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책에 대해 공부하고 장단점을 구분하여 좋은 책이라는 저의 기준점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외국서적을 국내에 소개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문화, 사회,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이기에 이에 대해 배우고 이해하여 국내 사람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낮은 장벽을 만들고 싶습니다.
2. 장헌공 할아버지에 대하여 기술하시오.
장헌공의 휘는 효순 자는 면숙, 호는 월탄으로 조선조의 문신이며, 시호는 장헌이다. 어려서부터 체격과 기질이 특별하여 생부께서 큰 인물이 되실 것을 예견하셨다.
1557년 15세 때에 서소문동에서 이응창으로부터 글을 배우셨고, 1560년 윤홍중에게 한유의 글을 배우고 이듬해 19세 때에 찬성 김안국의 아들로 사학에 정통한 김여부에게서 통감을 배우셨으며 1562년 20세 때에는 정주학에 능통한 도사 한윤명과 그의 동생 윤종씨를 찾아가서 소학과 근사록을 읽으셨다. 1565년 23세 때에 김근종을 찾아가 대학을 배우고 1568년 강원향시에서 생원이 되셨다. 1576년에 문과의 병학에 급제하였으며 검열 수찬을 거쳐 1589년 영해부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영해전투에서 승리하고 행정체계를 복구하였다. 그 공로로 경상좌도 관찰사에 특진, 순찰사를 겸임하셨다. 군량미 조달에 공을 세웠고, 병조참판을 거쳐 1596년 경상 전라 충청도 체찰부사가 되었다. 같은 해 한산도 무과의 시관이 되고 이순신이 천거하는 무장들을 발탁했으며 이듬해 지충추부사가 되셨다.
이조판서에 오르고, 평안도 관찰사 판중추부사 등을 거쳐 우찬성이 되었으며, 이어 판동령부사를 지내고 이조판서에 재임되었다.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올랐으며, 서흥부원군에 봉해지셨다. 이이첨 등이 인목대비의 삭호를 주청한 후 1618년 폐모를 시키자 관직을 사직하고, 판중추부사로 입적하시니 향년 79세셨다.
성품이 관대하고 후덕하며 사려가 깊으셨고 경학 또한 심오한 경지에 이르고 병법에도 밝으셨다. 초배 순흥 안씨에게서는 4남 2녀를 두시고 재배 진주 강씨에게서는 3남 2녀를 두시니 모두 7남 4녀가 되신다.
장헌공 휘 효순의 업적으로 ‘신기비결’의 저술을 꼽을 수 있는데 당시의 화약 신무기를 총망라하는 저술을 통해 화약병기의 제조법 및 사용 방법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전술의 개발과 관련하여 진서도 편찬함으로써 새로운 무기체계에 걸맞은 작전 방략을 모색하는 등 임진왜란과 광해군대를 대표하는 군사과학자이자 전략가라고 할 수 있다.
3. 우리나라의 전통예절인 절의 의미와 종류에 대해서 기술하시오.
절이란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공경하는 뜻을 나타내는 동작으로서 행동 예절의 기본이다. 절을 웃어른이 아랫사람에게 답배하기도 한다. 이는 비록 아랫사람이라고 그를 존중하는 표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절의 예절에는 절을 하는 예절과 절을 받는 예절이 있다.
절을 하는 대상에 따른 구분으로는 큰절, 평절, 반절로 나뉜다. 큰절(계수배)은 일방적으로 공경을 드려야 하는 대상에 대해서 하는 절. 절을 받는 사람은 답배를 하지 않아도 된다. 폐백이나 조부모와 부모의 수연 때 드린다. 평절(돈수배)은 서로 공경해 맞절을 하는 경우이며, 같은 또래의 사람끼리 또는 윗사람에게 문안이나 세배를 드릴 때 한다. 반절(공수배)은 평절을 받는 사람이 절하는 사람을 존중해 답배하는 절이며 가까운 친족이 아닌 성년자의 절에는 반절로 답배한다.
횟수에 따른 구분으로는 단배, 재배, 사배가 있다. 단배는 한 번만 하는 절이며 어른에게 평상시 보통 하는 절이다. 재배는 두 번 하는 절이며 죽은 사람의 영전이나 차례, 제사를 지낼 때 하는 절이다. 사배는 네 번 하는 절이며 옛날 왕, 성균관 향교 등에서 올렸던 절이다.
절은 두 손을 모아 방바닥에 대고 무릎을 꿇어 고개를 숙여하는 인사하는 앉은 절이다. 앉은 절의 기본예절로 첫째, 절을 할 수 없는 장소에서 상대를 만났을 때에는 절을 하지 않고 경례를 대신한다. 둘째, 절을 받으실 어른에게 “앉으세요” “절 받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어른에게 명령하는 것이므로 실례이다. “절 올리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옳은 예절이다.
셋째, 편찮아서 누워계신 분에게는 절을 하지 않는다. 절을 받으실 분이 받을 자세가 되어 있을 때 절을 한다. 넷째, 방안에서 인사를 할 때 어른이 나중에 들어오시는 경우 반드시 자리에서 일어서서 맞이해야 하며 어른이 앉으신 후에 절을 한다. 다섯째, 평상시에는 절을 한번만 하지만 문상이나 성묘, 제사, 차례, 결혼식 후 폐백을 드릴 때와 같이 의식 행사에서는 재배(두 번)를 한다.
4. 소감 및 건의사항
내 조상이신 장헌공 할아버지의 일대기를 알 수 있었고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의 뿌리에 대해 배우면서 나를 다시끔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고 앞으로의 미래까지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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