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三校戊辰族譜(삼교무진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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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회 작성일09-12-04 16:52 조회1,208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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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748년 영조(英祖)24년 무진(戊辰)에 발간.
三校 族譜 序(原文)
我韓氏有譜始刊於 萬曆丁巳重刊於 崇禎再甲申族姓源派譜牒顚末具見於二譜之敍矣又後四十 餘年子姓益蕃生於甲申後己有抱孫者而名無所載則宜更有編輯之事而恨未有任之者矣宗人琦氏命玄氏喆增氏慨然倡議同力編修閱數歲而成凡十九編規模仍舊而節目加詳筆削之際攷證精確不但爲一時之完書亦可使百世而繼之則可見其用心之周詳而用力之勤敏也書將入梓俾元震書其事元震竊惟譜牒之作本爲尊祖牧族以厚風俗也而其要又在乎追本先德而謹守遺訓也盖聞先民之言曰德厚者流光德薄者流卑是以宋之名臣有爲其君進擇妃之說者必以帝王之後聖賢之後功勛之後爲先盖取夫德厚流光之義也惟我韓氏其源出於箕聖而始祖太尉公以麗朝佐命元勳名在壁上子孫之昌熾甲於東方以沙麓之祥最盛他族莫敢望焉則此豈無所由然者而所謂德厚流光者信不誣矣抑又念箕子契之世也而契爲虞司徒掌五敎啓萬世道學之原而本之於一敬字箕子以洪範之道來治東方用夏燮夷而五事之用又以一敬字包之自箕子以來歷羅麗千五百年間人不知學學不知敬惟我先祖文敬公柳巷先生始爲主敬之學而其說見於陽村權公近所選文集序矣然則敬字之訓有來歷而前所謂德厚流光者又豈無所本而然哉嗚呼吾韓氏先德之大有如是也而世代愈遠後承寢徵殆將與德薄流卑者同其歸焉則具爲先代羞何如也繼自今爲吾韓氏者莫不追念先德之大而謹守敬字之訓父以詔子兄以戒弟世世無替則尊祖收族無大於是而其爲世道之益奚但止於後風俗而己哉是說也元震雖甚不肖竊願與諸宗人講之故輒敢不辭而謹爲之書 有明 崇禎後 再戊辰 仲秋日 後孫 元震 敬識
三校 族譜 序(譯文)
우리 한씨의 족보는 만력정사년(단기3950년 서기1617년)에 처음 간행하였고 숭정 재갑신(단기4037년 서기1704년)에 두번째로 간행하였으니 족성의 유래와 파계(派系)에 대한 족보의 시종경과가 이 두차례의 족보 서문에 밝혀져 있다. 다시 그후 40여년에 자손이 더욱 번창하여 갑신년 이후에 출생한 사람이 또 손자까지 보았으되 아직 족보에 기명되지 못하였다. 의당 족보를 속간하여야 할 터이나 일할 사람이 없어 걱정이러니 종인 기씨 명현씨 철증씨가 개연코 발기하여 편집에 합심 전력한지 수년만에 완성하니 모두 19편이라 규모는 구보의 본을 따랐으나 세목에는 더욱 소상하고 주록에는 첨삭의 사유가 분명하여 비단 일시 보기에만 완벽한 것이 아니라 백세후 까지도 전할수 있게 되었으니 심력이 얼마나 주도하였던가를 가히 알 만하다. 이제 인쇄할 단계에 와서 나에게 그 전말을 쓰라고 한다. 나는 생각컨데 족보를 편수하는 것은 본래가 조상을 존경하고 종족을 단합하기 위한 일이며 그 요점이 선대의 유덕을 추모하고 유훈을 지키는데 있는 것이다. 옛 말에 덕이 후한자는 후세에까지 은총이 미치고 덕이 박한자는 자손이 융성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송나라 때 명신이 그 임금의 비의 간택을 진언할 때는 반드시 제왕의 후예라든가 성현 또는 공신의 후예라는 것을 우선 말하였다 하니 그게 바로 세덕이 있는집 후예를 선택한다는 뜻인 것이다. 우리 한씨는 그 연원이 기자 대성에서 부터 계출되었고 시조 태위공께서는 고려개국의 원훈 벽상공신이시다. 자손이 번창하여 동방의 갑족이고 사록지상이 타성들이 감히 따를 수 없으리 만큼 융성하니 이 어찌 연유없이 그럴 수가 있겟는가. 덕이 후한자는 그 유택이 자손에게 미친다는 말은 과연 헛 말이 아니로다. 또 기자는 계의 후예이시다. 계는 우의 사도가 되어 오교를 주관하고 만세도학의 원류를 열었으되 敬자 한자에 그 근본을 두었었고 기자께서 홍범의 도를 가지고 동방의 미개한 민족을 교화하되 오교의 효용을 역시 경자 한자로써 총괄하였다. 기자 이래 신라 고려 1500여년 간에 사람들이 배움을 알지 못하였고 배워도 경자의 참 뜻을 알지 못하였더니 내 선조이신 문경공 유항선생이 최초로 敬자를 주로한 학문을 닦으셨으니 그 말씀이 양촌 권근이 서술한 문집 서문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즉 경자로 가르침이 오래된 내력도 있고 앞에서 말한 "덕후유광"이란 것도 어찌 근거없는 소유라고 할 수 있으랴. 오호라. 우리 한씨가 선조의 유덕이 이토록 크지만 세대가 멀어질수록 자손들의 뒷받침이 미미해서 선대의 음덕이 없는 비열한 족속들과 다름없는 존재가 된다면 그 선대를 위하여 수치스러운 꼴이 과연 어떠하겠는가. 지금부터 우리 한씨의 성을 가진 사람은 선조의 유덕이 지대함을 추모하고 경자로 가르침을 정성껏 지켜서 어버이는 자식을 가르치고 형은 아우를 훈계하여 대대로 변함이 없이 계승하여 간다면 조상을 존경하고 친족이 단합하는데 이보다 더 큰 일이 없을 것이요. 나아가서는 사회도덕을 위한 도움이 비단 풍속을 순화하는것 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 말씀은 내가 불초하나 여러 종인들에게 간절히 부탁드리고자 하는 말씀이므로 감히 사양치 않고 서문으로 쓴다.
숭정(명의종)후 재무진(단기4081년 서기1748년 영조24년 청건륭13년) 중추일 후손 원진 敬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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