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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한씨장헌공파종중

장헌공파를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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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m_04.png 정랑공 극겸(正?公 克謙 : 1589 ~ 1669)

 

공(公)의 휘(諱)는 극겸(克謙)이요. 자(字)는 자익(子益), 호(號)는 유은(柳隱)이다.좌의정(左議政)이며 호(號) 월탄(月灘), 시호(諡號) 장헌공(莊獻 公) 한효순(韓孝純)의 여섯째 아들로 1589년에 태어나 1669년 향년(享年) 81세(世)에 졸(卒)하셨다.

 

기일(忌日)은 11월 15일이다.

무오년(戊午年)(1619) 30세, 증광문고(增廣文科)에 급제(及第)하여 통훈대부(通訓大夫) 행(行) 예조정랑(禮曹正?) 겸 춘추관(春秋館) 기주관(記注官) 벼슬을 하셨다.

슬하(膝下)에 2남(男)(정일 廷一, 창일 昌一) 3녀(女)의 자녀를 두셨다. 공(公)은 인조반정(仁祖反正) 후(後) 부친(父親) 월탄공(月灘公)의 유허지 (遺墟址)인 충남 서산 해미 양림(현. 기지리 489)으로 낙향(落鄕)하셨다.

 

이곳은 월탄공(月灘公)께서 1589년 11월에 사은사(謝恩使) 서장관(書狀官)으로 임명(任命)받아 북경(北京)에 가셨다가 이듬해(1590년) 6월 돌아 오 시는데 기축사옥(己丑史獄)에 연루)(連累)되어 파직(罷職)된 것을 알고 8월 에 벼슬을 떠나 조용히 여생(餘生)을 보내고자 처가댁(妻家宅) 장인(丈人, 강효윤姜孝胤, 영산현감(靈山縣監 지냄), 근처(近處)에 농사(農舍) 14간(間)을 짓고 잠시 생활하셨고 그 후 3차례 더 거주 하셨던 곳이다.

 

배위(配位)숙인(淑人) 전주이씨(全州李氏)는 순영군(順寧君) 경검(景儉)의 따님이시다.

묘소(墓所)는 해미면 삼송리 산32번지 삼봉산(三峰山) 산록(山麓)에갑좌(甲坐)이며 비갈(碑碣)은 6.25전란 때 파손된 것을 1993년 다시 세웠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