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허지(遺墟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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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헌공(諱孝純)이 기거하였던 지역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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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충남 서산시 해미면 기지리 489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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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허지(遺墟地) 내력>
1589년 명나라 사은사 서장관(謝恩使 書狀官)의 일을 마치고, 6개월 만에 연경(燕京)에서 돌아온 후 봉산(鳳山)에서 좌사(坐事)(정사로 시비를 가리는 것)로 파직 된 것을 알았으며, 서산(瑞山) 해미 양림(海美 良林)에 내려온 후 다시 영해부사로 제수되었고 그 후 세 번에 걸쳐서 기거하였다. 1610년 68세에 이르러서는 덕산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해미 양림(海美 良林)으로 돌아와 망혜야복(芒鞋野服)하고 우거(寓居)하며 여생을 보내려고 계획을 잡았으나, 2년 후 김직재(金直裁) 역변(逆變)으로 다시 상경(上京)하였다. 현재 유허지는 장헌공(諱 孝純)의 후손이 거주하고 있다.
1. 48歲(1590) : 庚寅 8월 - 농사(農舍)14간(間)을 지음. 1589년 명나라 사은사 서장관(謝恩使 書狀官)의 일을 마치고 6개월 만에 연경(燕京)에서 돌아온 후 봉산(鳳山)에서 좌사(坐事)(정사로 시비를 가리는 것)로 파직된 것을 알았으며, 서산(瑞山) 해미 양림(海美 良林)에 내려온 뒤 12월에 영해부사(領海府使)로 제수되어 다음해 1월에 부임(赴任).
2. 55歲(1597) : 丁酉 봄 - 서산(瑞山)에 계심 전라(全羅) 좌수영(左水營)에서 이순신(李舜臣)을 만나고 임피(臨陂) : 옥구(沃溝)로 해서 결성(結城)을 거쳐 설창(雪倉) : 아산군 둔포(牙山郡 屯浦)에서 다시 되돌아와서 서산 서해바다에 계유격(季遊擊)을 만나러갈 때
3. 58歲(1600) : 庚子 겨울- 서산(瑞山) 해미 양림(海美 良林)으로 부체찰사(副體察使)로서 영남에 재부(再赴)하여 동래(東萊), 울산(蔚山), 밀양(密陽), 김해(金海), 창원(昌原), 경주(慶州) 등지를 순행하고 겨울(冬)에 서산(瑞山)에 옴.
4. 68歲(1610) : 庚戌 4월 - 해미 양림(海美 良林)으로 덕산온천에서 목욕하고 서산(瑞山) 해미 양림(海美 良林)으로 돌아와 망혜야복(芒鞋野服)하고 우거(寓居)하며 여생을 보내려고 하였다가 2년 후 김직재(金直裁) 역변(逆變)으로 다시 상경(上京)함.
[자료수집] [당초기(當初記)] [월탄공유사(月灘公遺事)(韓喆愚) 15,30,33,35,60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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