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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소장 한국사데이터베이스                                            

1) 국역비변사등록

○ 기사제목: 後金情勢獻議, 後金人刷還, 中國朝鮮合勢攻奴之意, 後金差人入送議   
    왕 재위년도:  광해군 9년  
    월일: 광해군 9년(1617) 5월 27일    

신(臣) 기자헌(奇自獻)의 의논은,  
"문희현(文希賢)을 불러 자세히 물어본 뒤에 의처(議處)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상께서 결정 하소서."
신(臣) 한효순(韓孝純)의 의논은,  
"차호(差胡)가 문희현을 꼭 보려고 하는 그 뜻을 알 수 없습니다. 노(虜)에 헤아리기 어려운 일이 있음에도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요. 차인(差人)의 왕래는 병가(兵家)에 있어 흔히 있는 일입니다. 문희현을 불러 물어본 뒤에 영리한 사람을 잘 선택하여 들여보내 노의 정형(情形)을 탐지하는 것도 무방할 듯합니다. 상께서 결정하소서."
신(臣) 유근(柳根)의 의논은,  
"다시 자세히 물어본다 하더라도 오히려 실상을 알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이 차인(差人)을 보내어 저곳에 출입하면서 그 정형을 탐지하도록 하여야겠으나 사람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사람 얻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신중히 가려야 하겠습니다. 상께서 결정하소서."
신(臣) 박홍구(朴弘耉)의 의논은,  
"차인을 보내어 탐지하는 것이 좋다 함은 전에 말씀 드린 바와 같습니다. 차호(差胡)가 문희현을 만나야겠다는 뜻은 실로 알 수 없습니다. 영리한 사람을 잘 선택하여 저들의 정형을 가서 탐지하는 것만 못하고, 박적(朴賊) 및 다른 적인(賊人)의 투입(投入) 여부도 탐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께서 결정하소서."
신 박승종(朴承宗)의 의논은,  
"차인을 보내어 탐지함은 병가(兵家)의 한 방법입니다. 문의현을 굳이 부를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상께서 결정하소서."
신(臣) 유희분(柳希奮)의 의논은,  
"성교(聖敎)에 따라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여 들여보내 자세히 탐지하는 것도 무방할 듯합니다. 상께서 결정하소서."
신 이상의(李尙毅)의 의논은,  
"노추(奴酋)가 우리나라 사람을 얻으려고 한 지가 오래입니다. 만약 처리(處置)에 있어 타당성을 잃으면 무리(無理)하게 시킨 일이라는 데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저들이 이미 호종(胡種)을 쇄환(刷還)하면서 계속 침책(侵責)하였습니다. 이제 만약 사람을 보낸다면 우리도 우리 백성을 쇄환하겠다는 명분을 붙여 이를 핑계로 저 곳을 출입하면 탐지하는 바가 있을 것이요, 이유가 없음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염려되는 것은 사람을 얻기가 어려운 점입니다. 또 한 가지 걱정은 관원(官員)의 형식으로 들여보내면 엄연한 한 사자(使者)로서 저들도 회답(回答)의 형식을 갖추어 경성(京城)에 가기를 요구할 것이니 그렇다면 막을 수 없습니다. 또 들으니 중국이 조선과 합세하여 공격하려 한다고 떠들어 호인(胡人)들을 억누르려는 꾀로 삼으려 한다 합니다. 천조(天朝)에서 사람을 보내어 사사로이 거래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전날 이자(移容)하여 화기수(火器手)를 조련하고 협동하여 노(奴)를 공격하자는 뜻에 어긋나므로 힐문(詰問)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비록 보낼 만하나 만 번 신중을 기하고 깊이 생각하여 살펴, 처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상(上)께서 결정하소서."
신 이이첨(李爾瞻), 신 남근(南瑾)의 의논은,  
"문희현 등을 불러 물어본 후에 차관(差官)을 들여보내 노정(虜情)을 탐지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상께서 결정하소서."
신(臣) 민형남(閔馨男)의 의논은,  
"갑인·을묘 (광해군 6, 7 1614년, 1615년) 에 연이어 사신이 되어 중원(中原)을 다녀오는 길에 노추(老酋)가 천조에 조공을 끊은 지가 여러 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사신의 일행이 조공을 바치려는 노차(老差 : 노추의 차사(差使) )와 서로 만날 리가 없는 듯합니다. 을묘년 가을이 다할 무렵 사은(謝恩)·동지(冬至)의 두 사행(使行)이 있어서, 신이 동지사로 갔었습니다. 일이 일행에 관계되므로 황공하여 감히 아뢰지 못합니다. 상께서 재결하소서."
신 이경전(李慶全)의 의논은,  
"사람을 잘 선택하여 들여보내 자세히 탐지하는 것이 불가하지 않습니다. 상께서 재결하소서."
신(臣) 심돈(沈惇)의 논의는,  
"만약 적임자를 얻지 못하고 보내기만 한다면 그 실상을 탐지하지 못할 뿐 아니라 적인(敵人)의 비웃음과 모멸을 받을 것입니다. 따라서 사건이 생길 우려마저 없지 않으니 차인(差人)을 들여보내는 일은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문희현에게 자세히 물어본 뒤에 다시 의처(議處)하는 것이 무방합니다. 상께서 재결하소서."
신(臣) 이병(李覮)의 의논은,  
"문희현 등을 불러다 자세히 물어본 뒤에 성교(聖敎)에 의하여 차관을 들여보내 노정을 자세히 탐지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상께서 재결하소서."
신 최관(崔瓘)의 의논은,  
"허실의 정형을 여기에서도 오히려 탐지할 수 있습니다. 지금 갑자기 차인(差人)을 보내서 물어본다면 적인의 비웃음거리가 될 듯합니다. 상께서 재결하소서."

○ 기사제목: 中江開市便否論, 釜山開市    
     왕 재위년도:  광해군 9년  
     월일:  광해군 9년(1617) 6월 6일    

영의정 신 기자헌(奇自獻)의 의논은,  
"근일 들으니 당초 강시(江市 : 중강의 마시(馬市) )의 설치는 비록 우리나라의 신청에 의한 것이었으나 나중에 여러 가지 폐단으로 도로 폐지하자는 논의가 있어 예부(禮部)·독무(督撫) 등 아문에 자회(咨會 : 공문 조회 )하여 정지하였다 합니다. 지금 진강아문(鎭江衙門)에서 도착한 자문에 상사(上司)의 비표(批票)를 받들었다 했는데, 상사에서는 다만 개시가 편리한가만을 물었으니 반드시 시행하겠다는 뜻은 아닌 듯합니다. 다만 구유부(丘游府 : 유부는 관서명 )의 앞뒤 게첩(揭帖)에, 개시되어야 한다는 이유를 역설하였으나, 공문에는 상사의 비표를 평범하게 인용하고, 사첩(私帖)에서는 반드시 시행할 것을 굳이 요청하였으니 이는 그곳 아랫사람이 유부(游府)에 간청하여 그렇게 한 듯싶습니다. 지금 이 자보(咨報)에 있어서는 좋은 말로, 이미 해부(該部) 등 각 아문에 자회(咨會)하여 정지한 것이므로 본국이 마음대로 시행할 수 없을듯하니 삼사(三司)의 지휘를 기다려서 시행하겠다는 뜻을 구체적으로 자복(咨復 : 회부 )하여 처리하는 것이 타당할 듯합니다. 다단 비국(備局 : 비변사의 별칭 )의 여러 신하들도 의논하여 올릴 소견이 있을 것이니 좋은 계획에 따라 처리하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상께서 재결하소서."

우의정 신 한효순(韓孝純)의 의논은,  
"중강개시에 있어 여러 가지 폐단을 전에 이미 경험하였습니다. 지금 다시 설립하면 반드시 후회가 따를 것입니다. 좋은 말로 따르기 어렵다는 말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다만 부산(釜山)의 관시(關市)에 대한 일을 중국 조정에서 거론하며 다른 문제를 격화시켜 근심이 되게 한다면 그 난처함이 또 이 보다 심할 것이니 관계되는 바가 중대합니다. 여러 의논이 하나같지 않음은 주로 이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대로 따르는 것이 무방할 듯합니다. 상께서 결재하소서." 하였다.
진원(晉原) 부원군 신 유근(柳根)의 의논은,  
"당초 이 일은 우리가 먼지 제기하였고, 여러 가지 폐단이 있음으로 정파(停罷)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지금 상국(上國)의 백성이 또 제기하니 마침내는 하고야 말겠다는 태도입니다. 할 수 없이 따라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문(咨文) 내용에 따라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가만히 천조(天朝)의 사람들을 보니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이미 발단하였으면 비록 사리를 들어 회유(回諭)한다 하더라도 따르도록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만약 이 한 가지 일로 다른 사건이 격화되어 어쩔 수 없이 허락하게 되면, 도리어 바로 허락하여 주는 것만 못합니다. 성상(聖上)의 재결에 달려 있습니다."
행중추부사 신 박홍구(朴弘耉)의 의논은,  
"개시에 대한 일은 당초 우리가 먼저 제기하고, 상국(上國)이 허락한 것입니다. 오늘날 상국이 개시를 요청함에 있어 우리가 곧 거절한다면 일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전에 들으니 상국의 사람들은, '대부분 왜노(倭奴)는 곧 조선(朝鮮)의 수적(讐賊)임에도 관시(關市)를 허용하면서 유독 상국에만은 어찌하여 허용하지 않는가' 라고 하니 이도 미안스런 일입니다. 특별히 의논하여 후회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상께서 재결하소서."
겸병조판서 신 박승종(朴承宗)의 의논은,  
"중강개시(中江開市)는 비록 여러 가지 폐단이 없는 것은 아니나 다만 부산의 관시를 방금 허용하였으니 저들이 만약 이를 이유로 든다면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체면을 생각할 때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께서 재결하소서."
행우찬성 신 유희분(柳希奮)의 의논은 위와 같으며,  
겸공조판서 신 이상의(李尙毅)의 의논은,  
"중강개시는 상국(上國)의 큰 이익입니다. 인민이 모여들면, 변어(邊圉 : 국경의 성곽 )는 자연 공고하여 집니다. 우리나라에 비록 폐단이 없는 것은 아니나 상국의 관사(官司)에서 큰 이익을 차지하려고 하니 용인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입니다. 이자(移咨)한 내용을 보니 '왜(倭)의 경우에는 허용하고 상국에는 허용하지 않는다' 라는 미안스런 말이 있는 점으로 보아 끝내 허용하지 않는다면 딴 사건을 격화시킬 듯합니다. 상께서 재결하소서."
겸예조판서 신 이이첨(李爾瞻)은 병조판서의 의논과 같고, 여천(驪川)부원군 신 민형남(閔馨男)은 병조판서의 의논과 같고, 행형조판서 신 이경전(李慶全)은 행지사 박홍구(朴弘耉)의 의논과 같고, 행우참찬 이충(李沖)은 병을 앓고, 행사직 이수일(李守一)은 탄핵을 받고 있는 중이며, 호조판서 신 최관(崔瓘)은 병조판서의 의논과 같고, 행동지중추부사 신 심돈(沈惇)은 진원부원군의 의논과 같고, 완창군(完昌君) 신 이병(李覮))은 병조판서의 의논과 같고, 행사직 남근(南瑾)은 병조판서의 의논과 같습니다.

2) 국역비변사등록자료 좌목(座目)

○ 왕 재위년도: 광해군 9년  

 (1) 좌목(座目)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항복(李恒福) 지방에 있었다.  
영의정(領議政) 기자헌(奇自獻) 21일 강원도로 나갔다.  
좌의정(左議政) 정인홍(鄭仁弘) 지방에 있었다.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 정창연(鄭昌衍) 병으로 숙배(肅拜)하지 못하였다.  
우의정(右議政) 한효순(韓孝純) 정사(呈辭 : 사표 제출 ) 중이다.  
당상(堂上)
진원부원군(晉原府院君) 유근(柳根)
행지중추부사(行知中樞府事) 박홍구(朴弘耉)
겸병조판서(兼兵曹判書) 박승종(朴承宗)
문창부원군(文昌府院君) 유희분(柳希奮)
겸공조판서(兼工曹判書) 이상의(李相毅)
겸예조판서(兼禮曹判書) 이이첨(李爾瞻)
여천부원군(驪川府院君) 민형남(閔馨男)
행호군(行護軍) 이정구(李廷龜) 주청사로 경사(京師 : 중국의 수도를 말함 )에 갔다.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이경전(李慶全)
행사직(行司直) 이수일(李守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성우길(成佑吉)
호조판서(戶曹判書) 이충(李沖)
예조참판(禮曹參判) 심돈(沈惇) 강화구관(江華句管 : 구관은 담당 )  
병조참판(兵曹參判) 이병(李覮) 북도(北道) 이주민(移住民) 추쇄구관(推刷句管)이다.  
대사헌(大司憲) 남근(南瑾) 역적 진(珒 : 臨海君 )의 노비구관(奴婢句管) 및 수원구관(水原句管)이다.

호조참판(戶曹參判) 최관(崔瓘) 유사(有司), 북도의 군향 구관(軍餉 句管)이다.  
행호군(行護軍) 유간(柳澗) 주청부사(奏請副使)로 경사에 갔다.  
낭청(郞廳)
우통례(右通禮) 양극성(梁克選)
사정(司正) 한겸(韓謙)
군자정(軍資正) 이함일(李涵一)
사과(司果) 이형원(李馨遠) 초 2일 창주(昌洲)의 군기(軍器) 실화(失火) 및 벽동군수(碧潼郡守)가 국경을 넘어 수렵(狩獵)한 사실을 조사하고 돌아오다.  
병조정랑(兵曹正郞) 이용진(李用晉) 무비사(武備司) 예겸(例兼 : 당연 겸임 )이다.  
부사정(副司正) 오숙(吳䎘)
사용(司勇) 변유헌(卞有憲) 평안도, 북도의 군향차지(軍餉次知 : 차지는 담당의 뜻 )이다.  
사용(司勇) 변흡(邊潝) 황해도, 이주민의 추쇄차지(推刷次知)이다.  
사용(司勇) 신경추(申景樞) 경상도  
훈련주부(訓鍊主簿) 박영(朴瑛) 전라도, 역적 진(珒)의 노비차지이다.  
사용(司勇) 선세강(宣世綱) 함경, 강원도이다.  
부사용(副司勇) 한경(韓璟) 경기, 공홍도(公洪道)  

 (2) 좌목(座目)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항복(李恒福) 지방에 있다.  
영의정(領議政) 기자헌(奇自獻) 20일 올라와 주옹리(住甕里)에 있었다.  
좌의정(左議政) 정인홍(鄭仁弘) 지방에 있었다.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 정창연(鄭昌衍) 병으로 肅拜하지 못하였다.  
우의정(右議政) 한효순(韓孝純) 정사(呈辭) 중에 있었다.  
당상(堂上)
진원부원군(晉原府院君) 유근(柳根)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 박홍구(朴弘耉)
겸병조판서(兼兵曹判書) 박승종(朴承宗)
문창부원군(文昌府院君) 유희분(柳希奮)
겸공조판서(兼工曹判書) 이상의(李尙毅)
겸예조판서(兼禮曹判書) 이이첨(李爾瞻)
여천부원군(驪川府院君) 민형남(閔馨男)
행지중추부사(行知中樞府事) 이정구(李廷龜) 경사(京師)에 갔다.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이경전(李慶全) 20일 소분(掃墳 : 경사(慶事)가 있을 때 조상의 묘에 성묘하는 일 )관계로 예산(禮山)에 내려갔다.  
행사직(行司直) 이수일(李守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성우길(成佑吉) 27일 평안병사로 제수되었다.  
호조판서(戶曹判書) 이충(李沖)
예조판서(禮曹判書) 심돈(沈惇) 유사(有司), 정사(呈辭)로 교체되어 호군(護軍)에 임명되어 14일 사(出仕)하였다. 강화구관(江華句管)이다.  
병조참판(兵曹參判) 이병(李覮) 양계(兩界)의 이주민 추쇄구관(推刷句管)이다.  
대사헌(大司憲) 남근(南瑾) 역적 진(珒)의 노비구관(奴婢句管), 수원구관(水原九官)이다.  
호조참판(戶曹參判) 최관(崔瓘) 유사(有司), 북도의 군향구관(軍餉句管)이다. 27일 소분 관계로 양근(楊根)에 내려갔다.  
행호군(行護軍) 유간(柳澗) 경사(京師)에 갔다.  
낭청(郞廳)
우통례(右通禮) 양극선(梁克選)
군자감정(軍資監正) 이함일(李涵一)
사정(司正) 한겸(韓謙)
사과(司果) 이형원(李馨遠)
병조정랑(兵曹正郞) 이용진(李用晉) 군색(軍色)으로 이동(異動)되었다. 대리에 유진증(柳晉曾)이 겸(例兼)하였다.  
부사정(副司正) 오숙(吳䎘) 13일 전라도조도사(全羅道調度使)의 종사관으로 나갔다.  
사용(司勇) 변유헌(卞有憲)
사용(司勇) 변흡(邊潝)
사용(司勇) 신경추(申景樞)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박영(朴瑛)
사용(司勇) 선세강(宣世綱)
부사용(副司勇) 한경(韓璟)

 (3) 좌목(座目)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항복(李恒福) 지방에 있었다.  
영의정(領議政) 기자헌(奇自獻)
좌의정(左議政) 정인홍(鄭仁弘) 지방에 있었다.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정창연(鄭昌衍)
우의정(右議政) 한효순(韓孝純)
당상(堂上)
진원부원군(晉原府院君) 유근(柳根)
행지중추부사(行知中樞府事) 박홍구(朴弘耉)
겸병조판서(兼兵曹判書) 박승종(朴承宗)
행의정부우찬성(行議政府右贊成) 유희분(柳希奮)
겸공조판서(兼工曹判書) 이상의(李尙毅)
겸예조판서(兼禮曹判書) 이이첨(李爾瞻)
여천부원군(驪川府院君) 민형남(閔馨男)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이정구(李廷龜) 북경에 갔다.  
행형조판서(行刑曹判書) 이경전(李慶全)
행의정부우참찬(行議政府右參贊) 이충(李沖)
행사직(行司直) 이수일(李守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심돈(沈惇) 유사(有司)  
병조참판(兵曹參判) 이병(李覮)
행부호군(行副護軍) 남근(南瑾)
호조참판(戶曹參判) 최관(崔瓘) 유사  
행부호군(行副護軍) 유간(柳澗) 북경에 갔다.  
낭청(郞廳)
좌통례(左通禮) 양극선(梁克選)
부사과(副司果) 한겸(韓謙)
군자감정(軍資監正) 이함일(李涵一)
성균전적(成均典籍) 남궁경(南宮㯳)
병조정랑(兵曹正郞) 유진증(兪晉曾)
부사정(副司正) 오숙(吳䎘)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박영(朴瑛)
부사과(副司果) 박동명(朴東命)
사용(司勇) 선세강(宣世綱)
부사용(副司勇) 한경(韓璟)
무신겸선전관(武臣兼宣傳官) 최두(崔㞳)
부사과(副司果) 이영달(李英達)

 (4) 좌목(座目)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항복(李恒福) 지방에 있었다.  
영의정(領議政) 기자헌(奇自獻)
좌의정(左議政) 정인홍(鄭仁弘) 지방에 있었다.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 정창연(鄭昌衍)
우의정(右議政) 한효순(韓孝純)
당상(堂上)
진원부원군(晉原府院君) 유근(柳根)
행지중추부사(行知中樞府事) 박홍구(朴弘耉)
겸병조판서(兼兵曹判書) 박승종(朴承宗)
행우찬성(行右贊成) 유희분(柳希奮)
겸공조판서(兼工曹判書) 이상의(李尙毅)
겸예조판서(兼禮曹判書) 이이첨(李爾瞻)
여천부원군(驪川府院君) 민형남(閔馨男)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이정구(李廷龜) 북경에 갔다.  
행형조판서(行刑曹判書) 이경전(李慶全) 해군 담당  
행부사직(行副司直) 이수일(李守一)
호조판서(戶曹判書) 이충(李沖) 10일 인사에서 숭정(崇禎)으로 가자(加資 : 품계를 높임 )되었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심돈(沈惇) 유사(有司), 강화구관  
병조참판(兵曹參判) 이병(李覮) 북도의 이주민구관  
대사헌(大司憲) 남근(南瑾) 역적 진(珒)의 노비구관, 수원구관, 체부구관(體府句管 : 체부는 체찰사의 영 )  
호조참판(戶曹參判) 최관(崔瓘) 유사, 북도의 양향구관(糧餉句管)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유간(柳澗) 북경에 갔다.  
낭청(郞廳)
좌통례(左通禮) 양극선(梁克選)
사정(司正) 한겸(韓謙)
군자정(軍資正) 이함일(李涵一)
사과(司果) 이형원(李馨遠) 25일 상(喪)을 당하였다.  
병조정랑(兵曹正郞) 유진증(兪晉曾) 무비사(武備司) 예겸(例兼)  
부사정(副司正) 오숙(吳䎘) 사자(使者)로 나갔다.  
사용(司勇) 변흡(邊潝) 황연도(黃延道), 북도의 양향구관 23일 소지(所志)를 올려 체차(遞差)를 요청하였으며, 대신에 전 선전관 이영달(李英達)을 입계(入啓)하였다.  
훈련주부(訓鍊主簿) 박영(朴瑛) 전라도, 역적 진(珒)의 노비구관  
사용(司勇) 신경추(申景樞) 경상도, 10일의 정사(政事)에서 해남(海南) 현감으로 제수되었으며, 전 현령 박동명(朴東命)을 후임으로 4월 11일 입계하였다.  
사용(司勇) 선세강(宣世綱) 함경, 강원도  
부사과(副司果) 한경(韓璟) 경기, 공홍도(公洪道) 25일 북도의 양향구관이 되었다.  
1원(員)은 차출(差出)되지 않았다. 후임에 무겸 선전관 최두(崔㞳)가 임명되었다. (2일 입계하였다. 평안도)  

 (5) 좌목(座目)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항복(李恒福) 지방에 있었다.  
영의정(領議政) 기자헌(奇自獻)
좌의정(左議政) 정인홍(鄭仁弘) 지방에 있었다.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정창연(鄭昌衍)
우의정(右議政) 한효순(韓孝純)
당상(堂上)
진원부원군(晉原府院君) 유근(柳根)
행지중추부사(行知中樞府事) 박홍구(朴弘耉)
겸병조판서(兼兵曹判書) 박승종(朴承宗)
행의정부우찬성(行議政府右贊成) 유희분(柳希奮)
겸공조판서(兼工曹判書) 이상의(李尙毅)
겸예조판서(兼禮曹判書) 이이첨(李爾瞻)
여천부원군(驪川府院君) 민형남(閔馨男)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이정구(李廷龜) 북경에 갔다.  
행형조판서(行刑曹判書) 이경전(李慶全)
행의정부우참찬(行議政府右參贊) 이충(李沖)
행사직(行司直) 이수일(李守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심돈(沈惇) 유사(有司)  
병조참판(兵曹參判) 이병(李覮)
행부호군(行副護軍) 남근(南瑾)
호조참판(戶曹參判) 최관(崔瓘) 유사  
행부호군(行副護軍) 유간(柳澗) 북경에 갔다.  
낭청(郞廳)
좌통례(左通禮) 양극선(梁克選)
부사과(副司果) 한겸(韓謙)
군자감정(軍資監正) 이함일(李涵一)
성균전적(成均典籍) 남궁경(南宮㯳)
병조정랑(兵曹正郞) 유진증(兪晉曾)
부사정(副司正) 오숙(吳䎘)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박영(朴瑛)
부사과(副司果) 박동명(朴東命)
사용(司勇) 선세강(宣世綱)
부사용(副司勇) 한경(韓璟)
무신겸선전관(武臣兼宣傳官) 최두(崔㞳)
부사과(副司果) 이영달(李英達)

 (6) 좌목(座目)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항복(李恒福) 지방에 있었다.  
영의정(領議政) 기자헌(奇自獻)
좌의정(左議政) 정인홍(鄭仁弘) 지방에 있었다.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 정창연(鄭昌衍)
우의정(右議政) 한효순(韓孝純)
당상
진원부원군(晉原府院君) 유근(柳根)
행지중추부사(行知中樞府事) 박홍구(朴弘耉)
겸병조판서(兼兵曹判書) 박승종(朴承宗)
행우찬성(行右贊成) 유희분(柳希奮)
겸공조판서(兼工曹判書) 이상의(李尙毅)
겸예조판서(兼禮曹判書) 이이첨(李爾瞻)
여천부원군(驪川府院君) 민형남(閔馨男)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이정구(李廷龜) 경사(京師)에 갔다.  
행형조판서(行刑曹判書) 이경전(李慶全) 남변(南邊)의 주사(舟師) 구관이다  
행우참찬(行右參贊) 이충(李沖)
행사직(行司直) 이수일(李守一)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 장만(張晩)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 심돈(沈惇) 유사이다  
완창군(完昌君) 이병(李覮) 북도의 이주민 구관이다  
호조판서(戶曹判書) 최관(崔瓘) 북도의 군향(軍餉) 구관이다  
행사직(行司直) 남근(南瑾) 역적 진(珒)의 노비추쇄(奴婢推刷) 구관이다  
행호군(行護軍) 유간(柳澗) 경사에 갔다.  
길천군(吉川君) 권반(權盼) 유사이다  
낭청
좌통례(左通禮) 양극선(梁克選)
사과(司果) 한겸(韓謙)
군자감정(軍資監正) 이함일(李涵一)
예조정랑(禮曹正郞) 남궁경(南宮㯳)
병조정랑(兵曹正郞) 유진증(兪晉曾)
사과(司果) 오숙(吳䎘)
부사과(副司果) 이덕부(李德符) 황연도(黃延道)  
부사과(副司果) 조응일(趙應一) 경기, 공흥도(公興道)  
부사과(副司果) 박동명(朴東命) 경상도 이주민 추쇄 차지(次知)이다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박영(朴瑛) 전라도, 역가(逆家)의 노비차지, 북도의 양향(糧餉)차지이다  
부사과(副司果) 최두(崔㞳) 평안도  
부사과(副司果) 황덕영(黃德韺) 함경도, 강원도  

 (7) 좌목(座目)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항복(李恒福) 지방에 있었다.  
영의정(領議政) 기자헌(奇自獻)
좌의정(左議政) 정인홍(鄭仁弘) 지방에 있었다.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정창연(鄭昌衍)
우의정(右議政) 한효순(韓孝純)
당상(堂上)
진원부원군(晉原府院君) 유근(柳根)
행지중추부사(行知中樞府事) 박홍구(朴弘耉)
겸병조판서(兼兵曹判書) 박승종(朴承宗)
행우찬성(行右贊成) 유희분(柳希奮)
겸공조판서(兼工曹判書) 이상의(李尙毅)
검예조판서(兼禮曹判書) 이이첨(李爾瞻)
행판중추부사(行判中樞府事) 이정구(李廷龜) 경사(京師)에 갔다.  
행형조판서(行刑曹判書) 이경전(李慶全) 남변(南邊)의 주사구관(舟師句管)  
행우참찬(行右參贊) 이충(李沖)
행사직(行司直) 이수일(李守一) 6일의 정사(政事 : 인사(人事) )에서 북병사로 제수되었다.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 장만(張晩)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 심돈(沈惇) 유사(有司)이다  
완창군(完昌君) 이병(李覮)
호조판서(戶曹判書) 최관(崔瓘) 북도의 양향구관(糧餉句管)  
행호군(行護軍) 유간(柳澗) 경사에 갔다.  
행사직(行司直) 남근(南瑾) 역적 진(珒)의 노비 추쇄구관(推刷句管)  
행부사직(行副司直) 우치적(禹致績) 29일 계하되었다.  
길천군(吉川君) 권반(權盼) 유사  
낭청
좌통례(左通禮) 양극선(梁克選)
사과(司果) 한겸(韓謙)
군자정(軍資正) 이함일(李涵一) 12일 졸서(卒逝)하였다  
예조정랑(禮曹正郞) 남궁경(南宮㯳)
병조정랑(兵曹正郞) 유진증(兪晉曾) 무비사(武備司) 예겸(例兼)  
사과(司果) 오숙(吳䎘)
부사과(副司果) 이덕부(李德符) 황연도(黃延道)  
부사과(副司果) 조응일(趙應一) 유고(有故)로 대(代)에 이영달(李英達)을 27일 계하하였다. 경기·
홍도(公洪道)  
부사과(副司果) 박동명(朴東命) 경상도 이주민의 추쇄차지(推刷次知)  
부사과 (副司果) 최두(崔㞳) 평안도  
훈련주부(訓鍊主簿) 박영(朴瑛) 전라도, 역적 진(珒)의 노비차지(奴婢次知), 북도의 양향구관(糧餉句管)  
부사과(副司果) 황덕영(黃德韺) 함경도, 강원도  

 (8) 좌목(座目)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항복(李恒福) 지방에 있었다.  
영의정(領議政) 기자헌(奇自獻)
좌의정(左議政) 정인홍(鄭仁弘) 지방에 있었다.  
우의정(右議政) 한효순(韓孝純)
당상(堂上)
진원부원군(晉原府院君) 유근(柳根)
행지중추부사(行知中樞府事) 박홍구(朴弘耉)
행우찬성(行右贊成) 박승종(朴承宗)
겸병조판서(兼兵曹判書) 유희분(柳希奮)
겸공조판서(兼工曹判書) 이상의(李尙毅)
겸예조판서(兼禮曹判書) 이이첨(李爾瞻)
여천부원군(驪川府院君) 민형남(閔馨男)
행판중추부사(行判中樞府事) 이정구(李廷龜)
행형조판서(行刑曹判書) 이경전(李慶全) 양남(兩南)의 주사구관(舟師句管)  
행우참찬(行右參贊) 이충(李沖)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 심돈(沈惇) 유사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 장면(張晩)
완창군(完昌君) 이병(李覮) 북도의 사민추쇄 구관  
호조판서(戶曹判書) 최관(崔瓘) 서북차지, 군향(軍餉)구관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 유간(柳澗)
대사헌(大司憲) 남근(南瑾) 역적집 노비구관, 체부(體府)구관  
행사직(行司直) 우치적(禹致績)
길천군(吉川君) 권반(權盼) 유사  
낭청(郞廳)
좌통례(左通禮) 양극선(樂克選)
사과(司果) 한겸(韓謙)
검상(檢詳) 남궁경(南宮㯳)
문학(文學) 박자응(朴自凝)
병조정랑(兵曹正郞) 유진증(兪晉曾) 예겸(例兼)  
사과(司果) 오숙(吳䎘) 조도사(調度使)의 조사관  
부사과(副司果) 이덕부(李德符)
부사과(副司果) 양두남(梁斗南)
부사과(副司果) 최두(崔㞳) 평안도  
훈련주부(訓鍊主簿) 박영(朴瑛) 전라도·군향색(軍餉色), 체부색(體府色), 역적집 노비구관  
부사용(副司勇) 황덕영(黃德韺) 함경, 강원도, 사민색(徙民色)  
부사과(副司果) 김여정(金汝頲) 경상도  

 (9)좌목(座目)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항복(李恒福) 지방에 있었다.  
영의정(領議政) 기자헌(奇自獻)
좌의정(左議政) 정인홍(鄭仁弘) 지방에 있었다.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 정창연(鄭昌衍)
우의정(右議政) 한효순(韓孝純)
당상(堂上)
진원부원군(晉原府院君) 유근(柳根)
행지중추부사(行知中樞府事) 박홍구(朴弘耉)
행우찬성(行右贊成) 박승종(朴承宗)
겸병조판서(兼兵曹判書) 유희분(柳希奮)
행공조판서(兼工曹判書) 이상의(李相毅)
겸예조판서(兼禮曹判書) 이이첨(李爾瞻)
여천부원군(驪川府院君) 민형남(闊馨男)
행판중추부사(行判中樞府事) 이정구(李廷龜)
행형조판서(行刑曹判書) 이경전(李慶全) 양남(兩南)의 주사차지(舟師次知)  
행우참찬(行右參贊) 이충(李沖)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 심돈(沈惇) 유사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 장만(張 晩)
완창군(完昌君) 이병(李覮) 서계(西界) 이주민의 추쇄구관  
호조판서(戶曹判書) 최관(崔瓘) 서북구관, 북도 군향(軍餉)구관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 유간(柳澗)
대사헌(大司憲) 남근(南瑾) 역적 진(珒)의 노비구관  
행사직(行司直) 우치적(禹致績)
길천군(吉川君) 권반(權盼) 유사. 3일 하직숙배(下直肅拜) 단자(單子) 입계(入啓)에 전교하기를 ‘함경도 순검사는 대례(大禮)를 치른 뒤 하직할 것을 유시(諭示)하라’ 하였다.  
낭청(郎廳)
좌통례(左通禮) 양극선(梁克選)
사과(司果) 한겸(韓謙)
검상(檢詳) 남궁경(南宮㯳)
문학(文學) 박자응(朴自凝)
병조정랑(兵曹正郞) 유진증(柳晉曾) 무비사(武備司) 예겸(例兼)  
부사과(副司果) 이분(李芬) 12일 평안 병영(兵營)의 군기(軍器) 화재 사건을 조사하러 나갔다.  
부사용(副司勇) 이덕부(李德符) 황연도(黃延道)  
부사용(副司勇) 양두남(梁斗南) 경기, 공홍도  
훈련주부(訓鍊主簿) 박영(朴瑛) 9일 도총도사(都摠都事)에 임명되었다. 대신에 16일 전 현감(縣監)이었던 황석남(黃錫男)을 계하(啓下)하였다 전라도 군향색(軍餉色) 역적 진의 노비차지.  
부사용(副司勇) 최두(崔㞳) 평안도  
부사용(副司勇) 황덕영(黃德韺) 함경, 강원도 이주민 추쇄차지.  
부사용(副司勇) 김여정(金汝頲) 경상도  

 (10) 좌목(座目)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항복(李恒福) 지방에 있었다.  
영의정(領議政) 기자헌(奇自憲) 23일 유생들의 소론(疏論)을 입었으며, 25일 논(論)을 입었고, 26일체차(遞差)되었다.  
좌의정(左議政) 정인홍(鄭仁弘) 지방에 있었다.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 정창연(鄭昌衍) 정사(呈辭)하였다.  
우의정(右議政) 한효순(韓孝純) 3일 정사하였다.  
당상(堂上)
진원부원군(晉原府院君) 유근(柳根) 3일 소분(掃墳)하였다.  
행지중추부사(行知中樞府事) 박홍구(朴弘耉)
행우찬성(行右贊成) 박승종(朴承宗)
겸병조판서(兼兵曹判書) 유희분(柳希奮)
겸공조판서(兼工曹判書) 이상의(李尙毅)
겸예조판서(兼禮曹判書) 이이첨(李爾瞻)
여천부원군(驪川府院君) 민형남(閔馨男)
행판중추부사(行判中樞府事) 이정구(李廷龜)
행이조판서(行吏曹判書) 민몽룡(閔夢龍) 당연 겸직  
행형조판서(行刑曹判書) 이경전(李慶全) 14일 한평군(韓平君)에 체부(遞付)되었다.  
행우참찬(行右參贊) 이충(李沖)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 심돈(沈惇) 유사(有司)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 장만(張晩)
완창군(完昌君) 이병(李覮) 14일 대사헌으로 제수되었다.  
호조판서(戶曹判書) 최관(崔瓘)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 유간(柳澗)
대사헌(大司憲) 남근(南瑾) 3일 정사하고 14일 부호군(副護軍)에 체부되었다.  
행사직(行司直) 우치적(禹致績)
길천군(吉川君) 권반(權盼) 유사. 14일 사직상소를 정원(政院)에 제출하였다.  
낭청(郞廳)
좌통례(左通禮) 양극선(梁克選)
사과(司果) 한겸(韓謙)
검상(檢詳) 남궁경(南宮㯳)
문학(文學) 박자응(朴自凝)
병조정랑(兵曹正郞) 유진증(兪晉曾)
부사과(副司果) 이분(李芬) 평안도에 사(使)로 나갔다가 23일 입경하였다.  
부사용(副司勇) 이덕부(李德符)
부사용(副司勇) 양두남(梁斗南)
부사과(副司果) 황석남(黃錫男) 4일 체차되다. 그 대신 전 현감(縣監) 이담(李憺)이 계하되었다.  
부사용(副司勇) 최두(崔㞳)
부사용(副司勇) 김여정(金汝頲)
부사용(副司勇) 황덕영(黃德韺)

 (11) 좌목(座目)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항복(李恒福) 지방에 있었다. 초10일 논계(論啓)로 관직만 삭탈하였다.  
영의정(領議政) 차출(差出)되지 않았다  
좌의정(左議政) 정인홍(鄭仁弘) 지방에 있었다.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 정창연(鄭昌衍) 정사(呈辭) 중이다.  
우의정(右議政) 한효순(韓孝純) 정사중이다. 초4일 출사(出仕)하여 숙배(肅拜)하였다.  
당상(堂上)
진원부원군(晉原府院君) 유근(柳根)
행지중추부사(行知中樞府事) 박홍구(朴弘耉)
행우찬성(行右贊成) 박승종(朴承宗)
겸병조판서(兼兵曹判書) 유희분(柳希奮)
겸공조판서(兼工曹判書) 이상의(李尙毅)
겸예조판서(兼禮曹判書) 이이첨(李爾瞻)
여천부원군(驪川府院君) 민형남(閔馨男)
행판중추부사(行判中樞府事) 이정구(李廷龜)
행이조판서(行吏曹判書) 민몽룡(閔夢龍) 당연 겸직이다.  
한평군(韓平君) 이경전(李慶全)
행우참찬(行右參贊) 이충(李沖)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 심돈(沈惇) 유사(有司)이다.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 장만(張晩)
대사헌(大司憲) 이병(李覮) 이주민 추쇄구관이다.  
호조판서(戶曹判書) 최관(崔瓘) 군향(軍餉) 구관이다.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 유간(柳澗)
행부호군(行副護軍) 남근(南瑾) 역적집 노비 구관이다.  
행사직(行司直) 우치적(禹致績)
길천군(吉川君) 권반(權盼) 유사이다.  
낭청(郞廳)
좌통례(左通禮) 양극선(梁克選)
사과(司果) 한겸(韓謙)
검상(檢詳) 남궁경(南宮㯳)
교리(校理) 박자응(朴自凝)
병조정랑(兵曹正郞) 유진증(兪晉曾) 당연 겸직이다.  
부사과(副司果) 이분(李芬)
부사용(副司勇) 이덕부(李德符) 24일 무신겸선전관 정명진(鄭名振)을 계하(啓下)하였다.  
부사용(副司勇) 양두남(梁斗南)
부사용(副司勇) 최두(崔㞳)
부사용(副司勇) 김여정(金汝頲)
부사용(副司勇) 황덕영(黃德韺)
부사과(副司果) 이담(李憺)

 ○ 왕 재위년도: 광해군 10년  

 (1) 좌목(座目)

영의정(領議政) 정인홍(鄭仁弘) 지방에 있었다.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 정창연(鄭昌衍) 논계(論啓)를 입었다.  
좌의정(左議政) 한효순(韓孝純)
우의정(右議政) 민몽룡(閔夢龍)
당상(堂上)
진원부원군(晉原府院君) 유근(柳根) 논계를 입었다.  
행지중추부사(行知中樞府事) 박홍구(朴弘耉)
행좌찬성(行左贊成) 박승종(朴承宗) 22일 상(喪)을 당하였다.  
겸병조판서(兼兵曹判書) 유희분(柳希奮)
겸공조판서(兼工曹判書) 이상의(李尙毅)
겸예조판서(兼禮曹判書) 이이첨(李爾瞻)
여천부원군(驪川府院君) 민형남(閔馨男)
행판중추부사(行判中樞府事) 이정구(李廷龜) 논계를 입었다.  
행형조판서(行刑曹判書) 조정(趙挺)
한평군(韓平君) 이경전(李慶全)
우찬성(右贊成) 이충(李沖)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심돈(沈惇) 유사(有司), 강화(江華)구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장만(張晩) 유사  
우참찬(右參贊) 이병(李覮) 이주민의 추쇄구관(推刷)구관  
호조판서(戶曹判書) 최관(崔瓘) 군향(軍餉)구관. 서북차지(西北次知)  
대사헌(大司憲) 남근(南瑾) 역적집 노비(奴婢)구관  
행부사직 우치적(禹致績)
길천군(吉川君) 권반(權盼)
낭청(郎廳)
부사과(副司果) 한겸(韓謙)
사인(舍人) 남궁경(南宮㯳)
병조정랑(兵曹正郞) 유진증(兪晉曾)
이조좌랑(吏曹佐郞) 이상항(李尙恒)
사과(司果) 이분(李芬)
사과(司果) 정응두(鄭應斗)
사과(司果) 양두남(梁斗南) 경기, 수유(受由 : 휴가로 )로 지방에 있었다.  
부사과(副司果) 정명진(鄭名振) 황해도  
사과(司果) 최두(崔㞳) 평안도  
부사과(副司果) 박대임(朴大任) 전라도  
사용(司勇) 황덕영(黃德韺) 함경·강원도의 군향차지  
사용(司勇) 김여정(金汝頲) 경상도, 체부(體府)차지  

 (2) 좌목(座目)

영의정(領議政) 정인홍(鄭仁弘) 지방에 있었다.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 정창연(鄭昌衍) 논계(論啓)를 입었다.  
좌의정(左議政) 한효순(韓孝純) 정사중(呈辭中)이다.  
우의정(右議政) 민몽룡(閔夢龍) 정사중이다.  
당상(堂上)
진원부원군(晉原府院君) 유근(柳根) 논계를 입었다.  
행지중추부사(行知中樞府事) 박홍구(朴弘耉)
겸병조판서(兼兵曹判書) 유희분(柳希奮)
겸공조판서(兼工曹判書) 이상의(李尙毅)
겸예조판서(兼禮曹判書) 이이첨(李爾瞻)
여천부원군(驪川府院君) 민형남(閔馨男)
문평군(文平君) 유공량(柳公亮)
한평군(韓平君) 이경전(李慶全)
우찬성(右贊成) 이충(李沖)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심돈(沈惇) 유사(有司)  
청릉군(淸陵君) 김신국(金藎國)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장만(張晩) 유사이다  
우참찬(右參贊) 이병(李覮)
호조판서(戶曹判書) 최관(崔瓘) 군향(軍餉)구관, 서북차지(西北次知)  
대사헌(大司憲) 남근(南瑾) 역적 진(珒)의 노비(奴婢)구관  
행사직(行司直) 우치적(禹致績)
길천군(吉川君) 권반(權盼)
낭청(郎廳)
사인(舍人) 남궁경(南宮㯳)
사과(司果) 한겸(韓謙)
병조정랑(兵曹正郞) 유진증(兪晉曾)
이조좌랑(吏曹佐郞) 이상항(李尙恒)
사과(司果) 이분(李芬)
사과(司果) 정응두(鄭應斗)
사과(司果) 양두남(梁斗南) 경기, 공홍도  
부사과(副司果) 정명진(鄭名振) 황연도  
사과(司果) 최두(崔㞳) 평안도 추쇄차지(推刷)차지  
사용(司勇) 박대임(朴大任) 전라도  
사용(司勇) 황덕영(黃德韺) 함경·강원의 군향차지  
사용(司勇) 김여정(金汝頲) 경상도 체부(體府)차지  

 (3) 좌목(座目)

영의정(領議政) 정인홍(鄭仁弘) 지방에 있었다.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정창연(鄭昌衍) 논계(論啓)를 입다.  
좌의정(左議政) 한효순(朝孝純) 초2일 논계를 입어 초3일에 체차(遞差)되다.  
우의정(右議政) 박승종(朴承宗) 초8일 복상(卜相)으로 있다가 제수되다. 또 도체찰사를 겸하라는 명(命)이 내리다.  
당상(堂上)
진원부원군(晉原府院君) 유근(柳根) 논계(論啓)를 입다  
행지중추부사(行知中樞府事) 박홍구(朴弘耉)
겸병조판서(兼兵曹判書) 유희분(柳希奮)
겸공조판서(兼工曹判書) 이상의(李尙毅)
겸예조판서(兼禮曹判書) 이이첨(李爾瞻)
여천부원군(驪川府院君) 민형남(閔馨男)
행판중추부사(行判中樞府事) 이정구(李廷龜) 논계(論啓)를 입다  
전흥부원군(全興府院君) 이시언(李時言)
행형조판서(行刑曹判書) 조정(趙挺) 초7일 체차되고 초8일의 정사(政事)에서 한천군(漢川君)에 임되다.  
문평군(文平君) 유공량(柳公亮) 초8일의 정사에서 형조판서로 임명되다.  
한평군(韓平君) 이경전(李慶全)
의정부우찬성(議政府右贊成) 이충(李沖) 주사(舟師) 구관당상이다.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심돈(沈惇) 유사(有司)이다.  
청릉군(淸陵君) 김신국(金藎國)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장만(張晩) 유사이다. 우참찬 이병(李覮)을 보방(保放 : 보증 석방 )하다.  
호조판서(戶曹判書) 최관(崔瓘) 북도의 군향(軍餉)을 구관하는데 서북 차지(次知)이다.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 남근(南瑾) 역률노비(逆律奴婢)를 관장한다.  
행사직(行司直) 우치적(禹致績)
진령군(晉寧君) 강홍립(姜弘立) 초 8일 원수(元帥)로 낙점(落點)되다.  
풍안군(豐安君) 임연(任兗) 12일 가출(加出)된 유사당상(有司堂上)으로 계하(啓下)되다.  
행사직(行司直) 윤휘(尹暉) 초10일 성절사(聖節使)로 부경(赴京)하다.  
길천군(吉川君) 권반(權盼)
한성부(漢城府) 좌윤(左尹) 김개(金闓)
형조참판(刑曹參判) 박자홍(朴自興)
낭청(郞廳)
사인(舍人) 남궁경(南宮㯳)
부사과(副司果) 한겸(韓謙)
병조정랑(兵曹正郞) 유진증(兪晉曾)
호조정랑(戶曹正郞) 정응두(鄭應斗)
이조좌랑(吏曹佐郞) 이상항(李尙恒)
1원(員)은 차출되지 않았다. 사과 이분(李芬)이 초1일 평안평사(平安評事)로 임명되다.  
훈련판관(訓鍊判官) 박성(朴珹)
부사과(副司果) 정명진(鄭名振)
부사과(副司果) 이경필(李景苾)
사용(司勇) 황덕영(黃德韺) 북도 군향구관, 함경도를 관장(管掌)한다.  
부사용(副司勇) 최두(崔㞳) 사민추쇄(徙民推刷)를 담당한다.  
사용(司勇) 김여정(金汝頲) 역률노비(逆律奴婢)를 관장한다.  

 3) 한국사료총서

 (1) 여지도서(輿地圖書)   補遺篇(京兆, 松都, 水原)公廨  

       상위서지: 여지도서(輿地圖書) > 咸鏡道(關北邑誌) > 咸鏡南道咸興府邑誌
       저자: 미상   
       분류: 고도서 > 사부(史部) > 지리류(地理類)

竝祀之癸未因 朝令徹 원주 本府雖在外方而設官分職與京衙門同民之於府官無城主化民之稱 明廟朝有一文士始稱城主仍以成例名公鉅卿爲留守恩澤在人沒世不忘者不爲不多而無立碑頌德之事爲沈公守慶始立碑自是相繼列立 近因 朝令不得立碑 원주

柳自新 柳熙緖 官止都承旨 원주 許潛 癸卯來 원주 崔天健 乙巳來官至吏曹判書 원주 洪可臣 乙巳來 원주 申磼 丙午來平川府院君 원주 韓孝純 戊申來 원주 徐渻 庚戌來號藥峯官至兵判謚忠肅 원주 金信元 辛亥來 원주 李時彦 壬子來官至二相 원주 洪履祥 壬子來號慕堂官止大司憲 원주 趙振 甲寅來 원주 吳億齡 乙卯來號晩翠官至判書 원주 李準 乙卯來 원주 趙國弼 丁巳來 원주 宋鍚慶 己未來 원주 李善復 己未來 원주 任吉後 庚申來 원주 安應亨 壬戌來 원주 李必榮 癸亥來 원주

 (2) 용호한록(龍湖閒錄) 七月京奇  

      상위서지: 용호한록(龍湖閒錄) > 龍湖閒錄三 > 第十五冊
      저자: 宋近洙      날짜:
      분류: 고도서 > 사부(史部) > 잡사류(雜史類)    

龍湖閒錄三
傳曰, 當詣健元陵, 綏陵親祭後, 仍詣景陵展謁矣, 日字, 以來月念後擇入。
<3권306>
傳曰, 八月十五日, 當詣山陵親祭, 該房知悉事。

大王大妃殿傳曰, 自今爲始, 朝臣戎服, 帖裏則依舊隨品爲之, 虎鬚朱笠貝纓永除, 以染紗笠磨練, 帖裏內着, 以軍服復舊例, 更爲定式。

禮曹草記,幸行日字, 八月二十八日·二十九日·三十日推擇啓, 傳曰, 二十八日定行。

傳曰,罪人朴燁·柳孝立·吳挺昌·趙載翰·李德師·崔載興·柳成模·朴相老·韓後翼·洪量海·李東馨·愼宜學, 並罪名爻周後, 復其官爵。

傳曰,李一和·李俊培·金壽賢·趙獻鎭·趙純鎭·趙方鎭·李勛濟·俞漢敬·金斗恭·金斗黙·沈▣(金+奕)·李在倫·宋國仁·沈魯賢·鄭在民·朴東稷·任燁·申鼎朝·韓廉鎭·申綱·黃久中·申宜柱·申季亮·李奎汝·黃汝玉·廉宗秀·李安黙·李勉信, 并罪名爻周。

傳曰,韓孝純·洪啓禧·金陽澤·金鍾秀·金鍾厚·沈渙之·金達淳·金漢祿·鄭日煥·金觀柱, 并復官爵。

以義禁府徒流案傳曰,不喜·南極·順心·鳳仁·碩鏞·貴甲·畢永·順榮·李明赫·羲榮·鍾澈·仲阿只·小秀·小阿只·俊榮·柳連·大阿只, 並放。

以濟州牧放未放成冊傳曰, 李明赫 羲榮並放。

大王大妃殿傳曰, 徐忭之誣告陷人, 即麟坪後孫之添讎也, 然而今當大霈, 特爲爻周罪名,

以示聖主恢蕩之盛德。

吏曹草記, 順興府使 洪衡謨, 以其身病, 有難赴任, 罷黜事, 傳曰允。

傳曰, 順興府使之代, 前府使 安膺壽擬入, 傳曰, 順興 安膺壽·南原府使 李承謙相煥。

 (3) 용호한록(龍湖閒錄) 特赦復官十月初十日  

     상위서지: 용호한록(龍湖閒錄) > 龍湖閒錄三 > 第十五冊
     저자: 宋近洙      
     분류: 고도서 > 사부(史部) > 잡사류(雜史類)

七八四, 特赦復官 十月初十日 원주
新赦罪人□□□燁·壺山君 檉 密豐君 坦·福昌君 楨·福善君 柵·驪興君 垓·驪陵君 圻·東平君 抗·故李夏鍾·正言 李東讓·判書 李培·左議政 韓孝純·領議政 金陽澤, 左議政 金鍾秀, 領議政 沈煥之·右議政 金達淳·判書 洪啓禧 吳挺昌·參判 鄭得煥·錦春君 朴相老·監司 朴燁·承旨 愼宜學 柳來模 李東馨·掌令 金鍾厚·洗馬 金漢祿 洪量海·都承旨 柳孝立。

已上復官爵事承傳, 右議政 金觀柱, 復爵事承傳, 韓孝純·洪啓禧·金陽澤·金鍾秀·金鍾厚·沈煥之·金達淳·金漢福·鄭日煥·金觀柱, 並復官爵, 罪人朴燁·柳孝立·吳挺昌·趙載翰·李德師·崔載興·柳成模·朴相老·韓復翼·洪量海·李東馨·愼宜孝, 并罪名爻

 (4) 나암수록(羅巖隨錄) 太學捲堂儒生所懷草  

      상위서지: 나암수록(羅巖隨錄) > 羅巖隨錄 第一冊
      저자: 朴周大     
      분류: 고도서 > 사부(史部) > 기사본말류(紀史本末類)

羅巖隨錄 第一冊
72. 太學捲堂儒生所懷草
七二, 太學捲堂儒生所懷草 發論李建杓, 班首李敎植·姜永悳 원주
彛倫斁喪四字 伏以, 國之有太學, 所以明天彛人倫之本, 而朱夫子以明倫二字, 揭之於堂者此也, 臣等卽於日前, 伏見前承旨臣崔益鉉疏批, 特下優旨, 又陞恩擢, 包納之洪量, 求諫之盛德, 臣不勝攢忭之至, 而迺者疏辭中 彝倫斁喪四字 , 自不覺心寒而膽悸也, 夫人之所以爲人, 國之所以爲國, 何莫非天彛人倫上做去, 故五敎敬敷而舜德巍乎, 彛倫攸敍而禹敎訖于, 彛倫之緊重果何如, 而若至於斁倫敗彛之境, 則是無君君臣臣父父子子之義, 而無父無君, 則是夷狄也, 禽獸也, 人何以爲人, 國何以爲國乎, 止 원주 , 噫斁喪之說, 有何摭實指的之端, 而妄自屑瀆於紸纊之下哉云云, 答曰知道, 崔益鉉之疏, 何嘗有語逼於師門者乎, 今此捲堂, 極不穩當, 卽爲曉諭勸入。
大國咨文又出來, 略曰, 洋倭琉三國, 以明春方欲大擧, 朝鮮國援例防備云。
再次草記, 崔益鉉疏辭中彛倫斁喪四字, 豈無關於師門明倫之道乎, 旣未得摭實指的之端, 則臣等何敢晏然自處於首善之地耶, 雖伏承還入之命, 末由承膺, 尤增惶蹙云云。
傳曰, 挾雜捲堂, 戕害正直, 萬萬駭痛, 發論及首頭, 一并移于秋曹, 嚴刑一次後, 遠惡地定配。
初一日, 學館儒生, 呈懷捲堂, 其翌亦然, 發論者, 黃□□靈岩 원주 及兩班首 李建杓 開寧縣, 李敎植, 姜永悳 高山縣 원주 又施竄配之典, 初二日, 崔益鉉再疏, 自明其彛倫斁喪之辭意, 皇廟毁撤, 鬼神出后, 王子大君繼后也 원주 罪籍蕩滌 海上及睦來善 韓孝純事 원주 王室之居在親親之列者, 尊其位重其祿, 不得干與於國政, 其他語侵, 張皇滿紙, 答曰, 萬東廟事, 已有慈敎, 今不可擧論矣, 傳曰, 崔益鉉疏, 多有語逼者, 以施竄配之典, 傳曰, 崔益鉉疏中, 來善·玄逸·孝純, 并施推奪之典。
初四日, 大臣及三司聯箚, 宗班通文宗會, 伏閤嶺儒之在泮者, 亦會議攻斥益鉉, 方擬伏閤, 嶺儒具巾服, 拜辭神門云。
大臣箚答曰, 崔疏中知有語逼, 故有所竄配之典, 老成之地, 豈可如是, 卿等其諒之, 答三司箚亦然。
刑判 李㘾疏救學館儒生, 答曰, 士者愛護, 予非不知也, 不當之事紛紜, 事極駭痛, 且王令之下, 有若抗拒者, 至於此境矣, 卿之此言, 容或無怪, 廣留 李㘾除下。
司果 趙愿祖呈疏請鞫, 大臣賓廳請鞫, 答曰, 大臣旣如是縷縷, 不得已依施, 蓋崔疏罔非語逼雲宮故也 원주

 (5) 향산일기 初一日

癸酉(高宗十年·一八七三年)
十一月小丙午朔
初一日
毁書院  
陰。 受祭物詣景陵, 夜雨, 崔再疏, 撤萬東廟, 君臣之義斁矣, 毁書院 , 師生之義絶矣, 思神出后, 父子之倫亂矣, 任事之臣, 擁蔽聰明, 操縱威福, 請尊其位重其權, 使不得干預於朝政, 韓孝純·睦來善·李葛庵追奪, 疏中以國賊誣告故也。

 (6) 동사략(東史約) 甲申  

      상위서지: 동사략(東史約) > 紀年東史約卷之十七 朝鮮茅亭李源益 編 >本朝紀
      저자: 李源益      날짜:
      분류: 고도서 > 사부(史部) > 별사류(別史類)

本朝紀
甲申宣祖十七年
明神宗萬曆十二年  

吏曹判書 李珥卒,
珥字叔獻, 號栗谷, 申命和外孫也, 母孕夢黑龍入室小字見龍, 學語便知文字, 七歲著陳復昌傳, 曰復昌爲人陰懷戚戚, 陽欲蕩蕩, 得志有異日之患, 嘗有父病進臂血, 禱家廟, 乃甦, 曰夢白頭老人指兒, 曰這是東國大儒, 其名玉邊耳也, 遂名之, 丁母憂廬墓幾毁性, 至奉恩寺見佛書深感, 死生之說, 乃入金剛山 一云庶母性悍嗜飮出家雲遊禪號義庵緇徒尊之以爲生佛竹兠子肩擔而行 원주 每靜坐凝思忘寢食久之忽念佛學無他奇妙只欲截斷此心走作之路凝聚精神造靜極虛明之域而萬象歸一一歸何處反以求之乃悟其邪復繹論語始乃大悟翌年還家 一云落髮非也金玄成曰珥下山一二年對衆梳頭髮長委地長髮之人數年間決不若是長也 원주 專精正學不待師承與李滉辨論義理又贈詩曰溪分洙泗泒峯秀武夷山活計經千卷生涯屋數間襟懷開霽月談笑止狂瀾小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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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聞道, 非倫半日閑。 趙穆稱翫不已, 滉, 曰詩不如其人矣, 別試對天道策, 考官梁應鼎等, 曰吾輩經思數日始搆此題, 李珥短晷所對如此, 眞天才也, 司馬文科竝魁, 人稱九場壯元, 事庶母, 出入必告, 晨問起居, 祿俸不自專, 乃底感化, 請伯嫂同居, 子侄同衣食, 閨門如官府設社倉, 倣呂氏鄕約, 其論治體以挽回三代, 自期格君正俗, ⊙弊政修, 武備爲急務, 雖被流俗沮排, 少不恤焉, 上始加裁抑, 晩復契合寵任方隆, 而盡瘁疾革, 徐益以巡撫就問邊事, 力疾口號六條以授之, 勉鄭澈用人勿偏重, 諄諄如夢中語皆國事也, 及卒年四十九, 少時夢入官府有人寫麝過春山草自香之詩以贈之及屬纊前夜家人夢黑龍穿屋升天 원주 上, 聞計驚慟音徹于外, 遠近士子呼痛如喪親戚, 哭聲振野, 禁軍市民流品吏胥皆哭奠, 歸葬之日, 執炬而送者亘數十里, ○柳成龍時在嶺南, 爲親設壽席, 親戚多集, 成龍忽不樂罷宴, 擧家莫測, 以其日聞珥之訃, 不忍設酌而怕時人之議, 不敢顯言, 其子袗與李好閔情厚, 好閔問, 曰先相公於栗谷末年推仰大異於初年之見云, 君亦知之乎, 袗, 曰素所習知之, 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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勿宣洩於他人, 此言若出, 吾亦不得接跡於嶺南矣, 李潤雨受學於珥最久, 嘗語人, 曰當陪侍先生時如入春風之室, 不能一日而離, 余亦不自知其何也, 雖愚蒙之輩, 一承顔色莫不心悅而誠服, 又曰, 鄭逑於珥慕好不淺, 嘗見李恒福所撰碑文歎, 曰儘是好文章第形容, 叔獻之學豈可如是凡率之甚乎, 蓋其意以不得中郞之責爲歉也, 其碑文, 曰公嘗以諫長至京, 余以弱冠拜于邸舍, 則諄諄爲學之要, 曰余已有歸志, 子若有志, 可訪我於石潭, 自是公不得歸, 余亦乾沒於世, 自劃於門墻, 不得窺其涯涘矣, 金長生之言, 曰其學以收心養性爲本, 而一於主靜天人性命之微, 修己治人之道無不硏窮芬華之中, 自持逾嚴屋漏之隱, 謹獨無愧, 余謂公入處正, 而覺處透, 故說時裕而做時敏, 又其進學之序, 若禹之鑿龍門, 先從肯綮處, 透汝漢濟漯沛然順勢, 故見之者疑, 若上達而後下學然, 世安有倒用工夫者, 英爽過人, 能超形氣之私, 脫去窒暗之臼, 其立也猶蜃閣之浮于海, 無斤斧繩削之痕, 而不可窮其間架抑謂是者非耶, 不由知索御風歷階, 而開關啓鑰洞觀本體中持活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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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無惉懣之虞, 精義制事, 故有致曲之利, 遂曲舞交氷解, 的破後世皆可稱述焉, 李廷龜添入句語謹獨無愧下曰與人講學所見恒出人意表立言著說橫豎無不當理與成牛溪爲道義交嘗見胡雲峯以情義之發分屬性心退溪又有理氣互發之說牛溪尊信退溪常主其說公以爲發之者氣所以發者理無先後無離合不可岐分辨析往復間有發前賢所未發處又於窮其間架下曰昔程子謂邱堯夫空中樓閣朱子謂張敬夫不歷階級而得之 원주 成渾, 曰叔獻之敏得之天, 資凡看文字與人談笑, 披關周覽, 略綽窺之疾如風雨, 已得其大, 義其所謂天地之化無異本, 人心之發無二原, 理氣不可互發等語, 皆實見得, 眞是吾師, 誠山河間氣三代上人物也, 又, 曰石潭日記最多格言百世之下, 可以見斯人之爲靑天白日也, 宋時烈, 曰日記要定一時之是非, 爲後世之鑑戒, 正本藏在沙溪家, 而不以示人, 亦未嘗語, 及蓋此書非野史而實有史法故也, 至愼獨藏之尤密, 宋浚吉屢請之, 乃暫借見而謄一本, 愼齋聞而大驚, 戒勿宣洩, 浚吉又不能然以致, 今日無人不見, 其見書者之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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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憾怒當何如也, 或云石潭日記爲栗谷藏拙地雖不刋布可也同時士大夫與己不合者并加之以不韙之目擧一世遂無全人 원주 又, 云鄭澈多托名僞錄者矣, 尹趾完嘗問於鄭太和, 曰人有言李珥喜黨論者, 李元翼在座正色, 曰李珥曷嘗爲黨論, 其秉心之公平無所偏倚, 比如人跨據屋脊, 呼兩邊人, 曰善者皆來, 與我共坐者也,
以李山海爲吏曹判書, ○前北兵使 李濟臣卒,
濟臣字夢應號淸江, 狀貌魁偉, 器局峻整, 當官抗議未嘗挫抑, 不俯仰隨俗見有冒虛名取利祿者, 必面斥之, 許人氣槪肝肺相見, 賙急分憂不以炎寒隆替有間, 嘗謂子弟, 曰人有富貴利達之心, 不如學也, 財貸當視如糞土, 故雖童孺婦女無不貴義賤財, 爲兵郞騶直盡分窮族, 爲書狀官譯胥徒隷不束而栗, 至是卒于謫所, 上, 曰開濟臣有淸節, 其所罪非軍機可還給職牒, 又謂李友直, 曰今廷臣議和虜濟臣, 若在必能使君父紓憂, 此予中夜拊髀而歎也,
大司憲 鄭澈, 應旨陳疏請釋許篈等, 三竄,
上, 曰都憲箚駭愕, 但此人素以剛直忠藎名, 姑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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容之, 又, 曰此輩不擧兩觀之誅, 其暗懦不斷。 宜召天譴, 今反以是爲言, 使姦邪生心此言幸而出於卿之口, 不幸而出於他人, 則必有以處之矣,
大司諫 幸應時疏斥金宇顒
箇似溪  

副提學 金宇顒在鄕陳疏, 曰殿下每以同心和悅戒群臣, 而宰相亦有以破東西一, 彼此爲說者聽其言則美, 觀其事則謬, 殿下豈知其布置同類排擯異己而氣燄之盛不可嚮邇者哉, 上, 曰宇顒其性固滯言論異僻, 大抵腐儒之言不足責也, 大司諫 辛應時乃上箚辨之, 曰宇顒之意專斥鄭澈, 而有如暗主在上權奸擅柄者然矣, 上, 曰宇顒誠 箇 妄言也,
拿鞫權應時, 金知禮等,
禮安縣監 金知禮 一云瞻 원주 以差員至軍威, 見其鋪陳華盛乘酒掠去, 縣監 權應時醉中移文安東, 曰賊人, 面縳髯長年可四十, 偸取官物而去, 官力單弱不能捕捉矣, 安東府使 兪大修以爲信然, 卽通四郵轉之, 至於忠淸 京畿列邑震動, 至爲戒嚴兩司發啓, 以犯軍律治之,
以宗系辨誣, 告廟頒赦, 加奏請使 黃廷彧爵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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會典尙未告成, 而廷彧呈文禮部, 頓首固請, 帝降勅諭, 曰爾以乃祖久蒙, 不韙屢請, 昭雪已於新修會典內詳載, 候書完頒, 行差官齎送, 廷彧復命, 上大悅告廟頒赦, 解御裘賜, 廷彧進階, 書狀官以下賞賜有差, 初譯官 洪純彦赴燕京至通州遊娼家見一女子有殊色托主嫗要觀時女衣素怪問之曰妾父母本淅江人仕宦京師遘癘而歿旅櫬在館獨妾一身返葬無資不得已自鬻言畢哽咽泣下純彦聞之惻然問其葬費可三百金而煩橐與之終不近焉女請姓名亦不言女曰不聞姓名妾亦不敢受賜乃告之而出同行人知其事者皆目笑之以爲騱漢其女子嫁爲禮部侍郞 石星之繼室言其事甚悉侍郞高其義每見東使輒問洪通官來否至是純彦隨正使 黃廷彧到京遙望朝陽門外錦幕連雲有一騎馳來言石侍郞聞洪判事來與夫人迎候女奴十餘簇擁夫人自帳中出純彦驚怯欲退避侍郞曰君記通州施恩事乎我聞夫人言君誠天下義士今幸相見大慰我心夫人見卽跪拜純彦俯伏固辭侍郞曰此報恩拜君不可不受夫人曰蒙君高義得葬父母感結中心何日可忘仍大張宴夫人執盃進酒侍郞問東使此來爲何純彦告之故侍郞曰君毋慮也留館月餘果得準請特命錄示新改會典 侍郞實爲之地也將還侍郞邀至其家禮待甚厚夫人以鈿函十各盛五色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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縀十疋曰此是妾手織以待公至純彦辭不受還到鴨綠江邊擡扛人隨至於是純彦載歸錦端皆剌報恩二字旣還買錦者爭赴純彦家稱其居爲報恩縀洞今訛爲古恩唐巷壬辰侍郞爲兵部尙書援助東方皆尙書力也純彦策光國勳封唐陵君先是卞誣久不準請諸議欲行賂純彦曰此事可以至誠格天何用賂爲且外國事勢與中國不同若開此路必至於國弊乃已矣 원주
黃海道大饑, ○觀試取朴箎等四人, 別試取閔仁伯等十人, ○礪城尉 宋寅卒,
寅字明仲號頤菴, 明粹端重, 視榮貴若浼, 賓禮師友, 講習爲事, 於禮說尤精, 博詩文雅, 婉書法嚴密, 惟好淡泊, 常服鹿皮裘, 自號鹿翁, 如李滉, 曹植, 李珥, 成渾, 咸敬重之, 與柳希春參定字訓, 盧守愼嘗欲破格, 薦以宗伯, 文衡未果, 好佳山水作亭, 漢濱扁以水月日邀, 騷人䪨客觴詠偕樂, 曹植常赴召遊蕩春臺, 寅設幕彰義門內, 邀其經過植, 曰白面都尉敢招黃髮先生耶, 終不入然而待以端士不以王門豪客視之,
安邊府使 楊士彦卒,
士彦字應聘號蓬萊, 生而秀朗神精, 霞擧見者不知其非也, 少以丹砂賦作進, 士有名詩祖李供奉不事雕餙天然冲夷, 作字楷草俱至深得, 腕法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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典名邑不贏一錢, 嘗, 曰吾四知後不可忝吾祖宰安邊, 忽鑿大池, 積茭蒭, 曰備他日軍馬之需, 翌年癸未大兵赴北列色困於挽汲府獨晏然人服其神, 少師南師古預策倭變, 往金剛超然有遺世志, 萬瀑洞大書八字, 楓嶽東作亭五處, 嘗過江西寺僧, 曰公是丹砂賦客耶, 士彦有詩, 曰風雨無人慰客行, 江西寺主最歡近。 相逢使說丹砂賦, 殊愧山僧亦識名。 遊金剛詩, 曰海銜天去盡, 山戴石來多。
左議政 鄭惟吉乞致仕賜几仗, ○命政府薦賢才, 朴淳薦辛應時, 李山甫, 徐益, 盧守愼薦李潑, 金宇顒, 韓準, 白惟讓, 尹先覺, 鄭汝立, 金弘敏, 金晬, 鄭惟吉薦尹先覺 權徵 金晬, 韓孝純, 洪獜祥, 李大海,

 (7) 동사략(東史約) 壬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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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李源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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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략
紀年東史約卷之十八 朝鮮茅亭李源益 編
本朝紀
壬辰
明 神宗萬曆二十年  

宣祖 원주 二十五年, 遣申砬 李鎰檢察諸道武備,
砬往京畿, 黃海, 鎰往忠淸, 全羅, 閱月而還, 所點者弓矢鎗刀而已, 砬素有殘暴之名, 所過殺人立威
以洪聖民爲大提學, ○特除金誠一爲慶尙右兵使, 備局言誠一儒臣不合此時邊帥之任, 不允, 誠一到尙州聞賊犯境, 晝夜馳進交印於中路, 進與賊遇將士欲走, 誠一下馬據胡床招軍官李崇仁, 曰汝勇士也, 不可見賊先退也, 一倭着金假面揮刃突進, 崇仁一箭殪之賊却走, 乃收召離散, 移檄列邑, 爲牽綴計,
歲星守箕尾躔,
一月  

時, 歲星入我國, 分野又健元陵, 三月望祭享, 官皆聞陵上若有哽咽嘻噓之聲, 自後或一日一至, 或數日一至, 盡月不止, 亂後倭賊積柴於丁字閣焚之柴盡而火自熄如是數四倭懼乃止棟宇至今仍舊 원주 雲峰血巖血流, 平壤永崇殿自開有兵馬駢闐之聲, 京城有怪鳥集于禁苑昏曉鳴號, 禁池有白氣如虹, 貫于寢殿,
四月  
大閱于都下, ○倭酋平秀吉, 遣平行長等三十六酋, 大擧來侵,
秀吉, 托言我國不許借道遂發諸島兵二十五萬, 號, 曰五十萬, 自領至一岐島, 以平秀家等三十六酋分領, 平義智, 平調信, 平行長, 玄蘇等, 爲導四五萬艘蔽海而來, 四月十三夜乘曉霧直抵釜山浦, 一云倭兵甲卒十六萬一千五百藁卒不與大將百五十員戰馬五萬匹斬刀十萬長鎗十萬斧刀十萬斫柴刀五十萬鳥銃三十萬三尺長釰人皆自隨 원주

○時, 玄風 孔好謙聚黨投倭據靈山自補監司, 勢張甚, 靈山人辛礎見再佑請擒之, 再佑, 曰當用幾人千人乎, 五百人乎, 礎曰一壺酒與一力士足矣, 再佑笑而許之, 礎爲弊褐羸 馬往叩賊營, 好謙辭不見, 礎顧門者, 曰吾以舊誼來, 將軍不之見此陳涉所以敗也, 好謙乃盛陳兵, 衛左右露刃而待, 字呼礎, 曰支叟汝從紅衣軍中來欲何爲, 礎怒罵, 曰爾看千古英雄, 孰有名心而能成大事乎, 且爾以先生之子疑先生之門徒, 礎嘗學於好謙之父 원주 誰有可信者乎, 爾以此心豈能一日自立乎, 吾將見汝之立敗, 吾不欲見之, 欲趨而出, 好謙大慙, 麾去兵衛起牽礎衣而撫之, 曰吾言戲耳, 延之上座, 命取酒來, 礎亦命從, 人自取酒酒酣, 礎, 曰今日吾爲君有密計, 請乘間好謙已醉, 曰吾與故人飮左右自便, 於是, 礎已懷綿絮襟領間, 自斟酒注其中, 而擧觥屬好謙, 謙已不省, 礎乃挾謙於座負之而趨, 從縣後缺垣, 已伏二力士投而與之, 使舁而走, 自勒馬斷後賊衆, 覺而追之, 礎呼, 曰爾等以朝鮮人爲孔賊所誤, 甘投倭奴以汚汝祖先乎, 且好謙能不滅亡, 以久撫汝衆乎, 皆補稍潰云, 路中好謙方醒, 係以組致之, 再佑軍中皆驚, 好謙將死仰謂, 曰支叟汝忍殺吾父之子耶, 礎, 曰殺其賊子乃所以報吾師也, 再佑卽薦授礎 玄風縣監, 徙治王旨, 山擒勦有方逃民稍集, ○諸沫 固城賤人也, 糾旅擊賊所向無前, 勇氣蜂聳, 鬚髮上衝如蝟毛, 賊畏之若神, 與再佑齊名, 朝廷聞之, 特授星州牧使, 未幾身死, 功業不著, 咸鏡節度使 李渾率兵入援,  

○都元帥 金命元等攻平壤城, 不克,
時, 順安募兵至千餘, 頗多精銳, 防禦使 金應瑞, 別將 朴命賢等所領兵萬餘人, 列二十餘屯於平壤城西, 以時抄擊, 至城外而賊終不出, 別將 金億秋, 林仲樑, 將水軍屯據大同江口, 朝議以爲我軍足以取勝, 不可等待天兵, 促令進攻於是, 三路進攻遇賊驚潰, 兵多死傷, 三戰皆不利, 退屯本壘,
時金應瑞一軍最殿李元翼等曰應瑞其死矣一日應瑞斬賊將奪白馬全軍而還馳啓行朝陞拜防禦使初賊酋行長副酋勇力絶人每先登陷陣行長倚重焉府妓桂月香爲其所獲極愛之欲脫不得請往城門審問親戚副酋許之桂月香登城哀呼曰吾兄何在連呼不已金應瑞應聲往赴桂月香迎謂曰若使我得脫以死報之應瑞許之自稱其親兄而入城桂月香俟賊熟睡引應瑞入帳中賊方據椅坐睡張兩目按雙釰滿面通紅有若斫人者然應瑞遂斬之頭已落地而猶能擲釰一着壁一着柱刃皆沒入應瑞佩其頭出門桂月香隨後應瑞度不能兩全亦斬之踰城而出翌曉賊始知大懼築土窟於練光亭北牧丹峯永崇殿北 원주
趙憲破倭賊於淸州,
憲自起兵之初, 義士雲集, 而監司 尹國馨劻攘失措無意勤王, 且以兵民多應義旅, 不利官軍, 多方沮撓之, 憲見國馨力言君臣大義, 國馨要與共事, 有安世獻者說國馨, 曰公擁一道無尺寸之功, 趙憲奮起於放癈之餘, 先公着鞭, 彼若得志必治公逗遛之罪, 國馨然之, 乃勅列邑囚義兵之父母妻
孥, 以此旣集者還散憲以書責之國馨, 尤不悅, 憲遂往湖右與參奉 李光輪等招募千餘人, 巡撫定山 溫陽, 又移檄以諭之, 曰顧玆島夷之爲寇甚於苖民之不恭, 殺人若刈草怨盈一國, 弒君如獵狐罪通于天, 甘言詐計初要㗖利而罔人匿跡潛師, 終欲越海而爭地, 憫龍輿之遠遊, 悵望宸於塞外, 豈料數十州縣終欠一箇男兒, 誓掃卉裳於彊城期扶李氏之社稷, 時賊據淸州, 防禦使 李沃等相繼奔潰, 僧將靈圭獨與相持, 憲聞之急向淸州, 親冒矢石, 薄城而戰, 賊大敗走, 我軍將登城, 忽有驟雨晦冥, 士卒皆股栗, 憲歎, 曰成敗在天信然, 乃鳴金少退, 賊焚其屍, 夜從北門潛遞, 自是湖左屯賊皆撤, 賊徒言義兵非巡察 防禦比, 冒死直前, 無摧挫之氣不可當也, 破賊後卽裁一疏, 使門生賚上行在, 上, 嘉賞拜奉常寺僉正,
陞慶尙右監司 金晬爲漢城判尹, 以招諭使 金誠一代之, 韓孝純爲左監司,
初, 誠一以嶺右義兵討賊之功, 啓聞甚悉, 衆情頗協, 誠一前有偏黨陷人之失, 而得怪鬼之目於儒賢, 後有奉使失對之罪, 而貽翫寇之歎於朝廷, 到今節制, 頗得士心, 時使命皆由間路, 而孝純按節之後常着紫袍, 鳴囉角盛, 陳威儀, 各邑屯倭登城指望而未嘗有怖色, 自此道路稍通, 人皆以爲復覩漢儀,
湖嶺水兵諸將討賊于加德島, 萬戶 鄭運死之, ○前訓鍊奉事 權應銖, 鄭大任等起兵擊賊, 復永川城, ○削奪全羅監司 李洸, 忠淸監司 尹國馨官爵, 使白衣從事, 以羅州牧使 權慄, 公州牧使 許頊爲本道監司,

(8) 동사략(東史約)  丙辰八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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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李源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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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李挺元|介屎|爾瞻|鄭夢弼|鄭正男|夢弼|兪昔曾|兪晉曾|沈菜|韓孝純|李沖|鄭仁弘|性智|申欽|韓浚謙|朴東亮|鄭仁弘|欽|浚謙|東亮|鄭曄|李廷龜|爾瞻|爾瞻|爾瞻|進刑府院君|金悌男|爾瞻|李瀡|悌男|尹善道|善道|李爾瞻|李元翼|司馬光|李德馨|沈喜壽|爾瞻|柳希奮|朴承宗|爾瞻|爾瞻|金悌男|元翼|爾瞻|洪茂績|鄭澤雷|金孝誠|慶源|李泂|善道|爾瞻|善道|爾瞻|爾瞻|景禧|爾瞻|景禧|善道|趙生|善道|希奮|希奮|金時讓|善道|希奮|李克健|爾瞻|善道|希奮|時讓|善道|崔沂|黃愼南|李爾瞻|沂|承宗|希奮|爾瞻|爾瞻|沂|爾瞻|許筠|沂|柳璨|黃愼南|沂|有石|有涵|有泳|柳璨|沂|淸源|雙栢堂|韓纉男|纉男|金尙憲|金世濂|奇俊格|鄭昕|李大燁|李爾|尹根壽|根壽|子固|月汀|李滉|曺植|陸光祖|王陽明|朱子|光祖|陽明|孔子|根壽|趙翼|孟子|廣寧, 司僕, 守令|吏判|參判|參議|尙宮|橫城縣監|政丞|尙書|政丞|尙書|海州牧使|宣傳官|臺諫|大提學|左贊成, 春川|牙山|濟州|洪原|鍾城|中國  

 (9) 동사략(東史約) 丙辰八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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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략
紀年東史約卷之二十 朝鮮茅亭李源益編
本朝紀
丙辰八年
四十四年  

建慶德仁慶兩宮鬻官爵,
主惡塞門洞王氣之說, 奪定遠君宮爲慶德宮, 重修時, 宮役稠疊, 民窮財乏, 刼民賣官, 納銀鐵木石, 則竝金腰玉頂, 市井謠, 曰金者玉者, 銀耶石耶, 錦衣紬衣, 土耶木耶, 守令邊將多少有限, 吏判, 則價高, 竝參判俱闕, 獨參議 李挺元阿附凶堂締結, 宮掖秉銓七八年, 富擬大內, 落點取舍, 亦視銀貨多少金尙宮, 稱介屎是更衣入侍者也性凶狡揣知宣廟有易儲之意主不自安乃密交於主至有毒弒之說及是專顓內外與爾瞻合少拂意輒發怒曰敢忘大德乎言發吾口上無以自立主有惶愧色受賂於諸姫始許薦枕主不敢達 원주 執筆擅斷, 主亦不得自由, 六淑儀十昭媛瞰尙宮之無聚首乞點, 時有鄭夢弼者, 尙宮所私, 貪縱用事, 朝臣無恥者附之, 挺元將擬襄陽政吏, 鄭正男, 曰襄陽名府也, 夢弼我姪也, 渠以白身安敢擬此以傷國體, 挺元慙, 沮士論快之, 司僕養馬邊忠吉納女有寵, 直拜橫城縣監, 兪昔曾 兪晉曾以其力超仕, 時有山蔘, 政丞 沈菜, 尙書 政丞 韓孝純 尙書 李沖 원주 之謠, 施文用以明兵逃留嶺南, 善風水卜術, 鄭仁弘妻以族妹仍進于上, 爲興土木之階, 僧性智礿以地術, 爲主所悅寵幸無比, 占第於闕外, 廣招方外遊髠, 宛成一伽藍
竄申欽 韓浚謙 朴東亮(徐潛),
時凶論復熾, 從鄭仁弘先除七臣之議, 竄欽 春川, 浚謙忠 渚寧海 원주 原, 東亮 牙山,  

 (10) 동사략(東史約) [丁巳九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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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략
紀年東史約卷之二十 朝鮮茅亭李源益編
本朝紀
丁巳九年
四十五年  

竄龜川君 晬 錦山君 誠胤,
龜川君 晬等宗室十九人, 上疏論爾瞻罪, 龜川謫順天錦山, 竄南海錦山, 嘗與朴弘道司宿湖堂, 唱酬以懷, 慶運宮爲題, 曰深深鎖鑰壯西宮, 望子臺空起夕風仙取乘雲攀不得, 孤臣淚盡穆陵東. 種松要作棟樑材, 却把盤枝礙漸臺. 安得斧斤斫伐盡, 滿窓邀得月華來. ○分承旨 曺友仁直慶運宮, 有詩, 曰橫廊寐莫鳥聲哀, 晴晝空庭掩州萊. 淸切地曾司出納, 荒凉歲久聚塵埃. 燕尋舊主投簾隙, 蜂趁殘花戲砌隈. 水涸銅龍宮漏絶, 香消金鴨篆灰惟, 蕭條物色殊南內, 陟降英霛隔夜臺. 白髮孤臣潛下淚, 不堪萇楚滿階栽. 又, 曰欲承無旨可能承, 承旨華銜底處微. 坐待黃昏薦影黑, 但看蝙蝠撲飛蠅. 白大珩見之, 遂以爲搆陷之資, 竟鞫問遠竄,
有大書于慶運宮,
李爾瞻 許筠做凶書投之慶運宮, 多不道之言, 且有勒奇驅朴脅柳迎大妃擧大事等說, ○初朴承宗聞爾瞻有廢母之意, 未知虛實嘗對語有鳥止於庭樹, 詖翼而鳴, 承宗, 曰彼雖微禽, 能和坡嘯, 不可輕視, 爾瞻默然不答, 又有飛蜂過前卽, 曰此是微蟲, 能知君臣之義, 承宗知其意牢始與之貳相攻甚於水火, 李慶全調劑兩間, 擬與保合約三昌爾瞻 廣昌 承宗 密昌 希奮 文昌會于掌苑署, 爾瞻先吟, 曰不是尋春樂事忙, 只要相會話心腸. 梅花亦解吾人意, 先占天和送暗香. 承宗, 曰十日相尋九日忙, 向來懷抱幾回腸. 梅寒竹瘦同淸標, 盡醉芳樽內醞香. 希奮, 曰憑君休道異閑忙, 但願彌堅鐵石腸. 李白桃紅都未管, 歲寒期保姓名香. 希奮謂爾瞻, 曰必去鄭造, 尹認, 韓纉男輩然後, 和好可成矣, 爾瞻雖許之, 而疑貳持兩端, 造等亦皆騷然不安, 約竟不成,
遣通信使 吳允謙等于倭,
倭遣使請和, 曰壬辰犯順之賊, 爲上國今盡除滅乃遣上使吳允謙, 副使 朴榟, 書狀 李景稷, 兼管被擄人刷還及還例贈銀貨皆封寘馬島, 允謙袖一扇, 景稷携一寶刀竝投海中, 馬島後皆輸送銀貨, 主命用於都監之役, 譯官問於景稷, 答, 曰以我爲已死問於允謙, 答, 曰以使臣直受爲言, 勿言國家取用, 聞者歎服, 其後倭差問, 曰貴國朝廷如吳某
者幾人, 答以不可悉數, 倭差笑, 曰欺我哉, 貴國人才雖盛, 定不過一人耳,
群臣上尊號, 敍彝立化明誠光烈 원주 大赦設科, \
許筠自京師還言, 中國有林居謾錄, 宗系被誣如舊, 主大驚更令筠委往申卞, 筠多載珍贈以性僞署彼此, 御寶文籍定奪四報, 主以爲大慶, 設科頒赦, 至土尊號, 沈善壽謂人, 曰前已昭雪, 又卞何誣, 筠銜之搆捏斥逐, 喜壽出城有詩, 曰黜官非是弃官歸, 回首江山何處依欲買小舟無片價, 傾箱惟有舊朝衣
追上宣宗廟號宣祖,
初, 有稱祖之議, 尹根壽以無義例上箚而止, 歷代創業與國統中絶而再造之君稱祖 원주 至是, 許筠 李爾瞻輩欲上尊號, 主以獨受爲嫌, 乃復倡前議改上廟號,
命榮川郡守 趙纉韓, 捕白馬賊, 斬之,
慶尙左道有白馬賊, 以布爲爲衣夜行則覆之人稱白馬賊 원주 纉韓捕其魁李慶基囚之, 其黨攻破獄門而出之, 乃以纉韓爲三道討捕使捕斬之,
以鄭昌衍 韓孝絶爲左右議政, ○前判書 黃愼卒, 愼字思叔號秋浦, 初名致愼, 夢天中大書黃愼更之, 少學於成渾, 渾詡其雪竹詩, 曰遠到人也嘗, 於一夜盡看, 三國志一帙頗覺服澁, 李命俊得新書甚奧難解, 質於玄翁, 玄翁, 曰問諸思叔乃示愼, 愼, 曰敬叔未解眞是怪書也, 手閱須臾便了, 曰別無難解處, 是陸學穿鑿之書, 而文理不足故, 爲說怪也, 使倭渡海有詩, 曰丈夫不怕死, 怕死非丈夫. 所願全吾節, 安得全吾軀. 賢哉, 鵄述郞抵死心不渝, 又以書告別于成渾, 曰不敢貪生辱命, 以負師友, 金長生嘗謂愼, 曰松江之敗由於公, 公亦何以隨衆口而低看松江乎, 愼曰松江之敗, 豈但由於我乎, 長生, 曰李山海由公之讒, 而從左腹行讒間, 託言松江枉法殺崔永慶, 斷成罪案矣, 愼始忤山海斥補遠邑中, 忤成龍連陷死地, 終忤爾瞻得禍, 尤酷至是卒年五十六, 主聞訃悼傷, 曰黃某有勞於國家復爵, 贈議政, 雖平日攻斥者亦, 曰黃某勁直吾曾論劾, 他日得罪士林矣, 申欽, 曰白沙 秋浦兩公風致人, 不可及白沙, 是人傑風流似晉時人, 忠介政事之才無出秋浦右者, 秋浦若在作相當在吾前, 其所施爲必有可觀矣, 頒示儒疏令都堂會議, 許筠 李爾瞻合聚無賴之徒, 資衣食具儒服, 手自搆疏日六七上, 又令館學生㐲閤淸廢大妃, 主皆容以納之, 而猶以大臣無可當其事, 故隱忍未決爾瞻等知韓孝純之可以奴事外以諸賊脅之, 內以悍妻迫之, 孝純尸氣餘魂, 承望風旨, 於是李覮 鄭造 尹認直發廢黜之論, 張喙向人以威脅之, 曰從違之際死生判焉, 公卿大夫惴惴無色, 儒生散人亦皆逃避, 主乃下渚儒疏令都堂議啓, 領議政 奇自獻箚, 曰會適乏人備員, 政府臣若主張遽爾廢之國史記之, 曰某世擅廢之云, 則非但得罪於萬世之公議, 亦必爲聖朝之羞矣, 前日臺諫只爲各處之論, 亦未免削職, 今若有此事而日後有請罪臣等者, 則雖聖慈必不得赦之, 況今李恒福 鄭仁弘在外鄭昌衍杜門不出, 韓孝純呈病, 得臣在京黽勉行公, 莫重莫大之事, 豈能獨自善處, 且癸丑年間諸大臣啓辭, 臣亦隨參, 有母雖不慈等語, 則不可前後異議也, 李元翼被譴時, 三司以爲朝廷本無此心, 而元翼老悖妄言歸惡名於聖上, 故人皆知聖上有虞 舜之行莫不欽仰聖德也, 諸疏訐漫雖不能詳記, 而如姜氏武后事未知其一一相類, 而晉帝時楊太后事似是妄發, 豈可擬議於聖明之世乎, 昔時張華以爲宜處別宮, 以全終始此, 則只如前日各處之論而已, 張后則朱憙以李輔國之殺, 特書楊綰傳亦無言, 及張后之事未知此言出於何書也, 閻后始爲殺弟之母, 中爲廢帝立北鄕侯, 終焉北鄕侯薨後又欲立他人, 其凶慘至此, 而周擧謂李郃, 曰今諸閻新誅太后, 幽在離宮, 若悲愁生疚, 一朝不虞主上將何以令於天下, 宜率群臣朝覲以答人望, 命卽疏諫順帝從之, 其時周擧之言非但不罪, 又能從之, 其亦可尙也, 已如神德之事身後以空言處置, 今則每年寒食祭之, 亦非今日可擬者也, 況今諸疏結語多在於天朝, 我國凡事天朝無不照管, 況石尙書 丁應泰 趙楫 李成樑等, 族黨亦必有存者, 若聞我國之有事不無意外之患, 若有如堇養眞德秀之言者, 則可不懼哉, 疏中又有郡縣之請言之氣塞, 臣意見昏塞謹掇, 司馬光 朱憙 眞德秀等諸人之見以獻詳問於李恒福, 鄭仁弘等且廣收廷議而處之, 時許筠等議治自獻容護之罪, 自獻不能沮遏乃倡收議之論, 三司請極邊安置自獻, 故久坐待百官收議, 畢歎, 曰廷臣若有數十輩執正論者, 據此可以直陳群情之不同冀回天心, 如金尙容一隊亦不能抗義也耶, 宗戚儀賓與同休戚之人亦阿時議矣遂肩輿而出, 李恒福方在, 東岡忽大雷撼宇愕然泣, 曰天其戒告之矣, 俄而䎹收議奮筆書, 曰誰爲殿下盡此計者, 父雖不慈子不可以不孝, 春秋之義子無讎母之義, 況爲仍也妻者, 是爲白也母誠孝之事, 夫爲有間也, 爲今之道體舜之德, 克諧以孝, 四怒爲慈愚臣之望也, 議至聞者髮豎, 或有泣下者, 邸吏手戰不能下筆, 軍器寺正 金德誠州議累百言, 及見恒福議歎, 曰吾所欲言者鰲相已盡之, 無足更鰲, 古人有請與范仲淹同貶者是足一死矣, 遂獻議, 曰臣之一, 片, 愛君之心, 與鄭弘翼 李恒福一也, 司果 鄭弘翼議, 曰惟我聖上不幸遭値人倫之變, 群臣佐下風者不能贊襄聖孝齋美帝舜, 而乃議此無前之事, 臣竊惑焉, 淸風君 金權議, 曰納君無遇, 微臣愛君之至誠終始全恩, 聖上處變之大德千載之下與舜竝稱區區之望也, 司果 李愼儀議, 曰體大舜之心, 行大舜之道, 此國家之福也, 孤跡蔭官一發此言, 固知當誅, 受恩兩朝不忍舍默, 司果 權士恭議, 曰天理人情無一毫未晝然後可以無憾, 僉知 吳允謙議, 曰朮古聖能盡處變之道者, 而爲法聖孝益大矣, 時鄭昌衍 李廷龜 尹昉聞門不出, 申翊聖亦托病不獻議, 如李光庭 權昐等平居大言者擧皆回至依何, 或曰, 三司大臣博採辟議而處之, 或, 曰莫大之事惟在博訪而處之, 皆推諉不直識者尤恥之, 柳根知事機托以省憤在外, 光庭始請休浴竟參, 庭請, 右尹 金鬪勒發坊民, 大將 李時彦調聚軍兵, 一情投疏, 上以欺蔽下以威脅, 安寘奇自獻, 李恒福, 竄鄭弘翼 金德誠 李愼議 金權權士恭金地粹, 三司請自獻恒福等罪, 擬配龍岡定平, 承旨 韓纉男擲配單於地, 曰此輩負何等罪惡而乃配以便地, 自獻攻朔州, 恒福政北靑, 弘翼等亦皆遠竄, ○李好閔諸人餓恒福於山壇邊, 好閔詩, 曰此地年年送客歸, 山壇擧酒祭江蘺. 吾行㝡晩當何處, 無復故人來別雖. 恒福和, 曰雲日蕭蕭盡晦微, 北風吹裂遠征衣. 遼東城郭應依舊, 只恐令威玄不歸.
過忘憂峴有詩, 曰獰風難透鐵心肝, 不怕西關萬疊山. 驅馬震巖千丈嶺, 夕陽回望穆陵寒過鐵嶺作歌, 曰鐵嶺高處宿雲飛, 雲飛何處歸. 願帶孤臣數行淚, 作雨去向終南北岳間, 沾灑瓊樓玉欄干, 傳播都下宮人皆唱, 主遊宴後庭酒酣聞此曲, 問誰所作也, 宮人以實對, 主愀然不樂泣下, 罷酒而終不能召還, 謁文宣王廟, 試士取許稷等五人,

 (11) 동사략(東史約) 戊午十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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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략
紀年東史約卷之二十 朝鮮茅亭李源益編
本朝紀
戊午十年
四十六年  

右議政 韓孝純率, 百官庭請廢大妃稱西宮, 從之, 是日地大震,
時博疏疊出, 或淸直廢, 或請數罪於宗社而殺之, 或請出置, 或請眞奏天朝, 爾瞻主奏廢, 筠主直廢, 孝純專价問計於仁弘, 其言詭秘不明, 在在廢削之間, 右參贊 柳澗坐爾瞻家, 直招政府吏出令庭請, 行路失色百官奔波, 孝純跛躄如老狗, 就庭百官會者凡七百八十人, 遂以廢削西官爲日, 召列卿進前各書可否, 在位惶怖失指, 金闓出位大呼, 曰此事何可問也, 有不從者則從其議耶, 孝純默默垂首而已, 爾瞻將草啓厲聲, 曰此國之大事有依違者非人臣也, 直以廢黜爲辭, 柳希奮, 曰庭請例從首揆之議, 箂庵 仁弘別號 원주 旣以去朝, 謁罷分司爲議, 則先罪萊相改其辭可也, 爭論至夜不決, 孝純竟從爾瞻議, 啓, 曰逆議初初令永慶亟進賀, 禮敎凶卜稱譽極貴, 曰誦妖經以新天福罪一也, 謀立已出防塞傳榻罪二也, 草野大賢盡忠抗疏泣勸, 先王屢下嚴旨罪三也, 詐稱末命矯摹御墨托議七凶罪四也, 密引憚男留宿宮中, 團束宮奴潛行部署, 且使孽豎廣募武士, 欲因夜操乘釁作亂罪五也, 設祭宮中盲巫咀呪鷄狗猪鼠狼藉宮掖罪六也, 穿掘陵寢造作假像, 雁經紅徦半夜埋置書諱肉片散飼爲鳶罪七也, 耕俊撰檄宮墻, 納失皆由內做出傳播外間罪八也, 黑門通書應祥, 被捉枕中破字義一納招使, 訴上國挑禍罪九也, 出金帛厚資羊甲, 入送倭中陰結外援罪十也, 自正月初四日至二十九日日輒三啓, 乃從之, 削尊號, 出玉冊玉寶去大妃二字, 稱西宮, 還出納徵納幣文, 御寶徽旨標信轝輦儀伏, 廢朝謁問安肅拜, 罷分司貢獻, 二品武將相邊守直, 臺啓庭請不參人, 求昌君 珖及宗班三十餘員領敦寧 鄭昌衍 晉原君 柳根 海昌君 尹昉 晉昌君 姜絪 淸風君 金權 綾海君 具宬 福泉君 吳百齡 松山君 金謂 豐寧君 趙祿 判中樞 李廷龜 知事 金尙容 申湜 知敦寧 朴安世 同敦寧 金玄成 僉知 吳允謙東陽尉申翊聖晉安尉柳頔 護軍 李時彦 司直 金瑬 權憘 宋英耉 鄭孝誠 李景稷 司果 朴東善等 원주 中鄭昌衍, 柳根, 李廷龜, 尹昉, 金尙容, 李時彦, 後政直彦 원주 吳允謙, 宋英耉, 稱爲八奸, 李時發, 金瑬, 李景稷, 朴瀰, 洪友敬, 柳頔, 鄭孝誠, 朴東善, 尹衡俊, 申翊聖, 稱爲十邪, 三宗室義昌君等, 五十五人竝遠竄, 告宗廟多敎八道, 主猶懼天下之議, 有奏聞之意, 義州府尹 鄭遵 造弟 원주 誣稱, 皇朝廢黜先帝貴妃鄭氏殺福王以爲證成之階, 主乃令千秋使金大德探報實狀, 大德以皇帝崇奉鄭妃, 恩遇福玉有踰先帝時, 據實回奏奏聞之, 凶計遂沮,
以鄭仁弘爲領議政, 韓孝純爲左議政, 閔夢龍爲右議政, ○前領議政 李恒福卒于謫所,
恒福字子常, 號弼雲, 又白沙, 生不乳二日, 不啼五日瞽者, 安堅, 曰是貴極人爵, 八歲詠琴劍, 曰劍有丈夫氣, 琴藏千古音. 十五六善角觗, 喜蹴踘, 大夫人泣責之, 恒福跪受敎, 折節讀書, 壬辰以都承旨將扈駕, 其姊請訣不許, 妾瞰其趨朝, 突前執帶以刀斷之, 在謫聞我兵不赴遼廣, 泣, 曰自此國其不復競矣, 至是中風疾, 夢宣廟宣召入侍, 金命元 李德馨 柳成龍皆侍, 宣廟, 曰某也無道戕害骨肉, 幽縶母后, 不可不廢, 德馨奏非李恒福不能決此議, 卽命宣召乃覺而歎, 曰吾其不久斯世矣, 後數日卒, 年六十三, 申欽, 曰風來凝遠, 氣宇軒豁, 廣顙隆準曲頰而白哲, 鬚髯翩翩長不踰中人, 而氣蓋一世, 行不治邊幅, 而動有規, 則立朝四十年, 出入將相屢登勳籍, 而家無擔石, 文章以氣爲主, 壬辰之訌一則公, 二則公, 丁巳一言撑天柱地, 朝廷黨比公獨中立, 不倚屹乎如泰山喬獄, 使生鄒魯不啻, 操縵之傳, 使生列國庶乎東里之政, 有謝文靖之標致, 而與時左有韓忠獻之德量, 而羅於罟後乎公者亦有朝暮遇者乎, 李廷龜, 曰其豪風爽氣傑句淸談, 隨遇溢發, 使人驚倒, 及重卜之時, 時勢已變不能匡正, 間雜詼諧有安石坐鎭之意, 物議甚不快, 宋英耉往訪値駕, 以大西瓜遺侍者進之恒福曰, 此人殆病我以與世推移也, 嘗遺崔鳴吉書, 曰如尹和靖諸人若得志當世, 則其能爲韓富事業乎, 蓋其意欲以韓富自況耳, 許筠㐲誅, 筠曄子, 文章獨步, 而輕薄無行, 嘗, 曰男女情慾天也, 禮法行檢聖人也, 我從天不敢從聖人, 參禪拜佛僞作讖記, 語皆凶慘, 欽慕鄭道傳選東人詩文, 取道傳詩爲首, 每, 曰當令英雄, 惟徐羊甲稱以石仙, 又, 曰末路之人矢落處立的奴事, 爾瞻以金闓輩爲腹心, 至是奇自獻子俊格疏暴其罪, 臺啓設鞫, 爾瞻恐辭連謂無可問之情, 直斬于市, 金闓杖斃, 餘黨遠竄, ○ 筠有妹名景樊號蘭雪軒善詩名於世 원주
明詔微兵遣姜弘立, 金應瑞等赴瀋陽,
時, 金汗入遼東, 殺撫遠鎭將, 帝勅徵兵, 本國遣李埁, 朴弘吉赴京, 聽命楊鎬, 付回帖言, 壬辰再造之勞, 責以觀望不赴, 且曰數萬難遽盈, 一面難獨當, 今與王約, 預選一萬精兵, 兼備旬日糧根出王之境, 以防逃逸, 乃以弘立爲都元帥 應瑞 一名景瑞 원주 爲副元帥, 發五道兵二萬餘人赴遼東,
別試取李稙等六人, 增廣科 恭聖后欽賜冠服宗系辨誣慶 원주 取金起宗等四十人,

 (12) 동사략(東史約) 癸亥十五年,仁祖元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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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李源益      날짜:
     분류: 고도서 > 사부(史部) > 별사류(別史類)

동사략
紀年東史約卷之二十 朝鮮茅亭李源益編
本朝紀
癸亥十五年, 仁祖 원주 元年
三年  

○時, 柳妃與宮人伏魚水堂中, 軍士圍住兩日, 柳氏, 曰吾豈隱匿逃生者, 使宮人宣言中殿在此, 大將方踞胡床起立退陣, 卽報于上, 供飯頗厚, 䘭在舟中吟詩, 曰塵寰翻覆似波瀾, 何必憂愁心自閑. 二十六年眞一夢, 好須歸去白雲間. 行與廢主相近, 就前叩地痛哭曰父不聽子之言, 致有今日主無以答,
奉大妃移御昌慶宮, 告廟頒敎大赦,
昭聖貞懿大妃若, 曰天生烝民樹之后辟, 蓋欲敍彝倫立徑紀, 上奉宗廟下安黎庶也, 宣祖大王不幸無嫡嗣, 因一時之權越少長之序, 以光海爲儲嗣, 旣在東宮失德彰著, 宣廟晩節頗有悔恨, 及至嗣位之後, 反道悖理罔有犯極, 姑擧其大者, 予雖不德然受天子之誥命, 爲先王之配體, 母儀一國積有年載夫爲宣廟子也者, 不得不以予爲母, 而光海聽信讒賊, 自生猜隙, 刑戮我父母, 魚肉我宗族, 懷中孺子奪而殺之, 幽閉困辱無復人理, 是蓋逞憾於先王, 又何有於未亡人, 至若戕兄剗弟屠僇諸住, 㩧殺庶母累起大獄, 毒痛無辜, 毁民家數千區創建兩闕, 土木之役十年, 未已先朝耆舊斥逐殆盡, 惟姻婭婦寺逢惡慫惥之徒, 是崇是信政以賄成, 昏黑盈朝, 輦金市官有同駔儈, 賦役煩重誅朮無厭, 民不堪命, 嗸嗸塗炭, 宗社之危若綴旒然不惟是也, 我國服事天朝二百餘載, 義, 則君臣, 恩猶父子, 壬辰再造之惠, 萬世不可忘也, 先王臨御四十年至誠事大, 平生未嘗背北, 而坐光海忘恩背德, 罔畏天命, 陰懷貳心, 輸款虜夷, 己未征虜之役, 密敎帥臣, 觀變向背, 卒致全師投虜流醜, 四海王人之來, 本國拘囚羈縶, 不啻牢梐皇敕, 屢降無意, 濟師使我三韓禮義之邦, 不免於夷狄禽獸之歸, 痛心疾首, 胡可勝言, 夫滅天理斁彝倫, 上以得罪於皇朝, 下以結怨於萬姓, 罪惡至此, 其可以君國居祖宗之天位, 奉宗廟之神靈乎, 玆以廢之, 綾陽君某宣祖大王之孫, 定遠君某之第一子也, 聰明仁孝, 有非常之表, 宣廟奇愛之養之宮中, 命名之義, 厥有微旨, 憑几之際, 握手噓唏, 屬意深重, 異於渚孫, 今者奮發大義, 討平昏亂, 脫予困辱, 復予位號, 倫犯得正, 宗社再安, 功德甚懋, 神人所歸, 可卽大位, 以繼宣祖大王之後,
冊夫人韓氏 西平府院君 韓後謙女 원주 爲王妃, ○誅逆魁李爾瞻, 鄭仁弘等, 頒敎八方, 時爾瞻自備局鞫, 所聞軍聲大震, 脫身而遁, 率三子 弘晬 大曄 益燁 원주 到漢江, 着州笠木綿衣, 將往嶺南, 止于墨坊, 官軍追捕之, 柳希奮希發待命于城外, 於是, 命爾瞻 仁弘, 或言仁弘職經揆地不宜極律議不行 원주 纉男, 纉男被縛渴甚求飮守卒曰大妃在西宮飢渴甚於汝今日而汝曾不進一勺水我何救汝纉男不敢更出言 원주 造, 訒, 偉卿凌遲傳首, 駑籍破瀦, 朴鼎吉等七十人正刑孥籍, 李覮 柳希奮 希發 希奮主小北希發主大北兄弟不相和 원주 等六十五人正刑順寧君 景儉等六十五人圍籬安置, 任就正等一百十五人遠竄, 李時言等二十三人削黜, 韓孝純等十四人追奪, 趙挺等十二人削奪, 裴大維等十六人削職, 鄭承緖等二十七人李尙毅等五十三人譴罷,
密昌君 朴承宗, 與其子自興自縊死,
是歲元日, 承宗有詩, 曰一言窹主知無分, 萬死酬恩倘有餘. 欲以身殉之也及變, 書上屢請對, 終不得見, 退坐備邊司, 復召李興立奪兵符, 興立欣然納之, 承宗手持符左右視猝無可任者, 乃復與之, 曰勉之天也, 自念徒死無爲, 遂跳出至蘆原農舍, 其子自興時任京畿觀察使, 與楊州牧使 朴安禮, 收兵至蘆原, 且檄水, 原防禦使 趙有道興兵合勢, 上聞之令申景裕馳喩安禮等罷兵, 承宗乃, 曰先王之孫, 上奉大妃, 下順輿情, 則宗社定矣, 然吾父子義難苟活, 卽書小紙傳示朝廷, 曰承宗父子不能正諫致有今日, 萬死無惜, 蒼黃跳出, 卽欲還入, 而若死亂兵中事不明白, 故沈淵而死, 以謝天地神人, 又遣書其子自凝, 曰汝曾與李偉卿爭論, 且不參庭請, 朝廷若許不死, 不必死矣, 欲投水楮子島, 旋又轉往其墳菴, 父子自縊死, 事聞追削勳爵, 金瑬 李貴等, 力陳承宗 希奮嘗殫試保西宮, 且微此二人, 臣等已死久矣, 李德泂亦上疏伸其冤, 上猶以三昌同惡爲斷案, 自凝卽自號挹白者, 而得任便居住家, 財竝籍沒, 李元翼嘗言其家財屬公, 則可, 籍沒不可, 上亦然之, 諸功臣分其産家屬李貴, 貴語其子孫, 曰此家終當還舊主, 勿賣亦勿改爲,
削閔馨男等二百餘人僞勳降資,  

 (13) 죽계일기(竹溪日記)  八月

       상위서지: 죽계일기(竹溪日記) > 竹溪日記卷之一 > 乙未萬曆二十三年
       저자: 趙應祿      날짜:
       분류: 고도서 > 사부(史部) > 잡사류(雜史類)

竹溪日記卷之一
乙未萬曆二十三年
八月

十九日 己未 원주
余再度抗拒○韓孝純拜大憲 孫允先拜鐵原 李繼禎拜槐山 李璁拜鳳山 李春祺拜沔川 金藎國拜禮佐 金公輝拜刑佐

 (14) 죽계일기(竹溪日記) 十月  

    상위서지: 죽계일기(竹溪日記) > 竹溪日記卷之一 > 乙未萬曆二十三年
    저자: 趙應祿      날짜:
    분류: 고도서 > 사부(史部) > 잡사류(雜史類)

竹溪日記卷之一
乙未萬曆二十三年
十月

二十九日 戊辰 원주
余與兵參 韓孝純 右尹 李瓘等移排東西
木柵○忠淸監司密啓入來

 (15) 죽계일기(竹溪日記) 正月  

      상위서지: 죽계일기(竹溪日記) > 竹溪日記卷之二 > 丙申萬曆二十四年宣祖二 十九年上
      저자: 趙應祿      날짜:
      분류: 고도서 > 사부(史部) > 잡사류(雜史類)

竹溪日記卷之二
丙申萬曆二十四年宣祖二十九年上
正月

初八日 乙亥 원주
余入番○文武科放榜○余往太容家則主
人爲柳慶宗設酌鄭光績 李憲國 李卿雲齊會仍往權昐慶宴則柳根 柳希霖 韓孝純 沈友勝 洪瑞鳳 尹敬立亦齊會極歡而罷

 (16) 죽계일기(竹溪日記) 十一月  

     상위서지: 죽계일기(竹溪日記) > 竹溪日記卷之三 > 丙申下
     저자: 趙應祿      날짜:
     분류: 고도서 > 사부(史部) > 잡사류(雜史類)

竹溪日記卷之三
丙申下
十一月

初九日 辛丑 원주
雨余入番○備邊司啓奏聞使 洪世恭年衰有病請遞○鄭期遠拜奏聞使 柳思瑗拜書狀官○各道巡察使 從事官一竝新差成安義拜平安從事 朴彝敍拜黃海從事 宋諄拜忠淸從事 金藎國拜全羅從事 宋馹拜慶尙從事○忠淸虞候 元祐男移拜江原助防將因備邊司啓也
初十日 壬寅 원주
嘉山郡守 邊好謙 鳳山郡守 金公輝相換李順慶拜積城 田見龍拜司贍正 丁允祐拜 缺 원주 知李用諄加嘉善韓孝純加資憲李時發加通政工佐 南晫 刑佐 郭止善相換○院啓會寧府使 尹安性請仍任穩城○日本和議不成與黃愼不見此是日前密啓中辭意云耳凶醜稔惡何時可已乎
十八日 庚戌 원주
余見尹相及李廷馨○咸鏡監司書狀輸城察訪 鄭浹昏劣取侮請罷○府啓典牲主簿 沈潑性本愚慢全不供職今又無端下鄕請先罷後推又啓曰李時發雖有操鍊捕賊之功已陞正職韓孝純已以嘉善爲體察副使 李用諄已以通政爲觀察使今不須臾爲陞秩請竝改正舍人 兪大禎於臺諫入府之時送人干請不職事體甚矣請推○院啓安城郡守 李櫓爲人浮誕請遞依 允

 (17) 죽계일기(竹溪日記) 二月

      상위서지 : 죽계일기(竹溪日記) > 竹溪日記卷之六 > 甲辰萬曆三十二年宣祖 三十七年上
      저자 : 趙應祿      날짜:
      분류 : 고도서 > 사부(史部) > 잡사류(雜史類)

竹溪日記卷之六
甲辰萬曆三十二年宣祖三十七年上
二月
二十日 辛丑 원주
韓孝純拜吏判 許頊拜戶判 李弘老拜忠淸監司○蔡慶先 趙之祺 韓壽民來見

二十九日 庚戌 원주
吳億齡拜吏參 李頤亨拜泰安 金涌拜尙州 具思孟拜判義禁 金公輝拜林川 許晉拜右尹 李德胤拜義城 尹晊拜交河 李薳拜陽川 李瑗拜司藝 韓浚謙拜同義禁 徐尙男拜 康陵參奉 許鏛拜判決事 洪命元拜典籍○院啓翊運功臣濫錄之弊上年臺啓有所論執己爲蒙 允而今又盡復其舊且有潻入之人請依臺啓施行何如又啓曰扈從征倭功臣分爲二等以淸勳籍何如

 (18) 죽계일기(竹溪日記) 十一月

     상위서지 : 죽계일기(竹溪日記) > 竹溪日記卷之七 > 甲辰下
     저자 : 趙應祿      날짜:
     분류 : 고도서 > 사부(史部) > 잡사류(雜史類)

竹溪日記卷之七
甲辰下
十一月
初一日 丁丑 원주
備忘記曰銓曹卽銓衡人物用捨進退者而王府罪人非渠之所當問也越爼代庖尸祝不爲受職勿侵古人有訓近觀銓曹選人之際頗有不愼之端予含容置之然若終不責其實則朝廷之事所誤必多其漸不可不社矣予豈得已哉始擧一事而言之他可類推也濟州乃海外孤島卽凶賊之所嘗睥睨而其判官之有闕也命擇除授再三丁寧期欲得人可以小紓一隅之顧而敢以崔瓘擬差予 不識瓘之面目而觀其諺簡則其爲人也極是愚劣無知者此豈可擬於濟州者乎當世智用之士不患無人而必捨彼而取此何也是則不以國事爲意而欲以耽羅與敵也且臺諫侍從之臣隨手易置惟意所欲無復顧忌王府罪人書啓與否自有有司而敢擧常赦之所不原者以試予意身以銓曹之官陰弄禁府之權若此手段其爲將來之弊有不可言豈勝寒心意謂臺諫之彈章夕已至矣而寥寥乎數日若面壁而坐默無一言其習亦可知矣然此豈堂上之所爲郞僚中燥妄之輩廁於其間作此癏弊吏曹堂上郞廳竝推考○兩司皆避嫌
初二日 戊寅 원주
余又見權昐於京營庫韓浚謙 尹義立 權昕 尹起聘 柳澄等齊會飮餞而罷○玉堂處置兩司皆出仕
初三日 己卯 원주
大雨府啓天曹政本也銓衡人物甄別臧否之責實在於此居是職者所當難愼於注擬之際必使官得其人以副淸明之治而近來除拜之間私意太勝不問人器之如何惟急於新舊之收錄庸雜苟充仕路溷淆識者之譏議固已久矣至於肆赦之時罪罰輕重之擬議稟決各有攸司而妄肆已見乃敢以不當稟之事不避越職之嫌偃然冒達縱恣無忌莫此爲甚請吏曹堂上色郞廳竝罷又啓曰當 二字缺 원주 欲殺崔永慶之時搆誣成獄必置死地 聖明洞燭其奸狀不待訊鞫特命放釋而具宬時爲臺諫一聽其指嗾而首倡再鞫之論以致永慶之瘦死終使殺士之名歸之於 聖明宬之罪惡實萬世神人之所共憤而但施付處之律得保首領已爲失刑而今又以參錄功臣之故遽下放釋之命物情莫不驚惑請還收成命院啓同○領相四度呈辭
初四日 庚辰 원주
吏判望沈喜壽 許頊 成泳 朴弘老 韓孝純 許筬凡六望而許頊爲之○兩司啓吏曹堂上罷職事停
初八日 甲申 원주
韓俊謙拜吏參 黃暹拜吏議 李民寏 申光立拜正言 金尙容拜尙州 盧廷善拜庇仁 李德溫拜典籍○院啓我 聖上至誠大義昭揭宇宙凡有血氣孰不感泣一國臣民不謀同辭宗戚大臣臺諫近密之臣及國人大小之情冀上 尊號沖謙之德雖一 向牢執聚首渴望之心決非一人之所遏而領相 尹承勳妄肆己見伏閤日淺敢以停止之論可否於諸宰歸美 君父此莫大之擧而承勳之試問可否不知其何意也其他輕躁之言顚妄之罪不一而足且於 玉候愆和半夜受鍼之日雖在疾病呈告之中莫不奔走驚遑而承勳偃息在家不爲來詣 闕下人臣之義果如是乎身在具瞻欲沮公共之論退在私室不赴 君父之病糾之 王法固難容貸請罷府啓同

 (19) 죽계일기 (竹溪日記)五月

       상위서지 : 죽계일기(竹溪日記) > 竹溪日記卷之七> 乙巳萬曆三十三年宣祖三  十八年上
       저자 : 趙應祿      날짜:
       분류 : 고도서 > 사부(史部) > 잡사류(雜史類)

竹溪日記卷之七
乙巳萬曆三十三年宣祖三十八年上
五月

十六日 己丑 원주
陰余與鄭光績 鄭昌行 韓壽民 李麒壽 權俊 李時言爲榜會于司譯院但洪履祥有故未參是爲一欠也○李命俊拜戶佐 沈惀拜永平 李又荃拜黃海兵使 李善復拜應敎 尹守謙拜禮佐 韓孝純拜平安監司 洪汝諄拜戶判 金忠敏拜洪原 李愖拜兼弼善 金信元拜同知 宋應洵拜副學 元彧拜韓山 李通拜溫陽 李升亨拜恩津 尹先正拜鍾城 玄極拜 二字缺 원주 李麟貴拜報恩 許涵拜尼山 柳塗拜公判 金德謙拜忠都 司宰參奉 權安立 慶基殿參奉 尹翊相換○府啓楊根郡守 李昇曾被重劾旋授本職請遞又啓曰原從功臣 缺 원주 雜之類以東西班正職追贈者令該曹一一還收何如又啓曰出身哨官之善放鳥銃者迭使出獵而所獲禽獸都監以爲己用云尤極無謂大將及中軍 千把摠請竝推

 (20) 죽계일기(竹溪日記) 八月  

    상위서지: 죽계일기(竹溪日記) > 竹溪日記卷之八 > 乙巳下
    저자: 趙應祿      날짜:
    분류: 고도서 > 사부(史部) > 잡사류(雜史類)

竹溪日記卷之八
乙巳下
八月
二十日 壬戌 원주
閔德男拜正言 金壽賢拜咸從 趙中立拜安 岳 尹璶拜綾城 姜弘德 任忠榦拜僕簿 鄭孝誠拜戶正 李復亨拜海判 柳拜 王子師傅 白大珩拜刑正 崔嵩拜常簿 申景裕拜靈山 柳悅拜通津 曹潝拜安奇 閔韺拜戶佐 李慶祺拜典籍 安士說拜禁都 韓孝純拜贊儀○府啓監試二所賦題語涉上國事體未安試官不察之失大矣請推○余將有鄕行受由

 (21) 죽계일기(竹溪日記) 六月

       상위서지 : 죽계일기(竹溪日記) > 竹溪日記卷之八 > 雨午萬曆三十四年宣祖 三十九年上
       저자 : 趙應祿      날짜:
       분류: 고도서 > 사부(史部) > 잡사류(雜史類)

竹溪日記卷之八
雨午萬曆三十四年宣祖三十九年上
六月
初二日 己亥 원주
吏判 許筬三度呈辭加給由
初三日 庚子 원주
吏判肅拜
初四日 辛丑 원주
李尙毅拜副學 韓孝純拜判義禁 趙安邦拜三水 尹孝先拜正言 宋光啓拜刑正 吳靖拜司書 黃敬中拜兵佐 申葆拜黃州 鄭默拜嘉山 吳汝橃拜禮佐 李尙信拜大成 田浹拜訓僉 權縉拜全羅京試官 趙希輔拜忠淸京試官 尹訒拜慶尙京試官○府啓聖廟東廡後壁有人夜書一時朝紳及人所不知之名遍滿於四間之廣居泮儒生爭相聚看傳播藉藉此卽匿名書也固不足言而但 聖廟至近之地有此襍汚欲去其跡者擅自畫鏝洗濯以致舟艧剝落請掌務官及其日上直官竝罷守僕亦爲囚禁治罪何如近來人心妖妄日益好怪或稱社長或稱居士者周流四方誑惑一世京則漢城府外則各道監司嚴立事目一切痛禁何如○尹暻 李思孝來見

 (22) 죽계일기(竹溪日記) 七月  

       상위서지 : 죽계일기(竹溪日記) > 竹溪日記卷之九 > 丙午下
       저자 : 趙應祿      날짜:
       분류 : 고도서 > 사부(史部) > 잡사류(雜史類)

竹溪日記卷之九
丙午下
七月
初一日 己巳 원주
大雨震電閔宇慶拜江陰 許鏛拜慶州 梁應深拜泰安 李鑰拜務安 宋惟諄拜連山 韓孝純拜兵判○府啓壬寅以後納銀而付軍職者并皆削去何如○余差一所封彌官○余往餞尹履之

 (23) 죽계일기(竹溪日記) 二月

      상위서지 : 죽계일기(竹溪日記) > 竹溪日記卷之九 > 丁未萬曆三十五年宣祖 四十年上
      저자 : 趙應祿      날짜:
      분류 : 고도서 > 사부(史部) > 잡사류(雜史類)

竹溪日記卷之九
丁未萬曆三十五年宣祖四十年上
二月

初九日 壬寅 원주
府啓赴京使臣全不擇遣往往貽笑於上國同知 韓述 司直 黃廷喆上年以謝恩使赴京而往來之際多有鄙瑣之事聞者唾罵請罷 聖節使 金●(車+夾)人旣頑巧年又衰妄不合朝聘之任請
十二日 乙巳 원주
大司諫 成以文以下啓曰臣等伏聞上年謝恩使 韓述 黃廷喆 宋仁汲等赴京時多行鄙陋之事如進獻布蔘等物各自分取全沒廉恥至於仁汲則殆有甚焉一行盤纏濫自私用三人罪狀大槪如此臣等欲幷論而未及發矣今者兩使先被臺論而仁汲獨免臣等不得不直據所聞而啓之伏承 聖批臣等論事後時誠未上孚之罪著矣請遞臣等之職大司憲以事啓曰臣等頃論韓述 黃廷喆之時欲并及宋仁汲至於搆草而但聞其所爲甚於述等浪藉名目多不近理或恐出於譯官輩怨口欲更加聞見得實而處之只論兩使矣昨見諫院之啓臣等論事不敏之罪大矣請遞臣等之職 答曰兩司所論槪因所聞於人者而爲之皆非目覩之事詳略何嫌但仁汲則予以爲出於譯官之疾怨今世任怨之臣未易得故也勿辭退待○玉堂箚請兩司出仕
十三日 丙午 원주
朴承宗拜戶判 鄭協拜大成 尹晊拜金溝 柳濟拜萬頃 李㙫拜宣川 李民慶拜高山察訪 鄭復禮拜洪州 羅大用拜昆陽 張蓋世拜樂簿 沈悅拜忠淸監司 林得義拜杆城 裵興立拜永興 柳●拜司書 尹唯幾拜參知 張晩拜同知 申昆壽拜引儀 鄭賜湖拜安邊 宋克訒拜北評事 金信元拜知事 李弘老拜聖節使 吳靖拜書狀官 吳允謙拜典籍 黃有中拜刑佐 鄭經世拜大邱 李惟侃拜松歷○備忘記曰凡求官之人皆患失之徒吮癰之類也將焉用之其心稍知廉恥則必不爲此況守今卽臨民之官銓曹務盡裁抑用人之際必取不求官者而授之求官者而退之 毋使奔竸而一守令之窠碎首而爭之政體有所虧銓曹有所羞人心極可鄙時習㝡可惡宜體此意而無忽○備忘記曰人心不淑廉恥倒喪至於朝聘上國其禮至嚴一動一靜必由義理宜無負專對之寄而無恥之輩自行買賣朝鮮大賈見稱中國貽辱朝廷莫此爲甚彼舌官鼷鼠之類何以紏檢哉書狀官乃行臺御史則所當以風力剛明之人擬差責其一行奸濫之弊侍從臺諫不爲不多而必以無聞之人苟充者極爲未穩書狀官遞差三望皆以有名望臺侍擬入○諫院再避大司憲以下又啓曰臣等初聞 韓述 黃廷喆等始自我國濫索規外路費及到 上國之界其所買賣無不親執宋仁汲則盤纏銀子任意私用進獻之物黯默占取至於變著唐服出入娼店云故前日論啓之時欲爲并論而但仁汲所爲之事有非士未之所爲且聞仁汲大失一行之心其所云云之說恐未必十分盡信故欲更加聞見得實而後處之非謂仁汲必無此事而不爲幷論也今見諫院再避之辭臣等未及論啓之失有所難免請遞臣職
十四日 丁未 원주
陰余仕進本倉頒祿○院啓韓述 黃廷喆 宋仁汲等赴京之時多有鄙陋之事其在我國濫索規外路費及到上國親執買賣不知羞恥如補數布蔘等物各自占取仁汲則尤有甚焉一行公共盤纏亦爲私用加以變著唐服出人娼店人言藉藉辱國辱命之罪極矣兩使及書狀官 驛官 軍官等請拿鞫定罪府啓同依 允

二十五日 戊午 원주
韓孝純拜吏判 李弘老拜兵判 李光英拜北虞侯 李楗拜果川 鄭孝誠拜朔寧 權悟拜淸河 宋啓祿拜萬頃 李眞彦拜龍宮 朴楗拜樂僉 兪昔會拜江界判官 南瑾拜判決事 李夢綽拜平安評事 許綏拜厚坐 成以直拜東參 吳允謙拜司藝 金起南拜僕僉 丁好恭拜兵正 閔德男拜校理 李慶震拜摠都 具寅拜戶佐 李愖拜宣川 黃敬中拜修撰○璞來見

 (24) 조선시대사초 Ⅱ(朝鮮時代史草 Ⅱ) 乙卯十一月十二日甲申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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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金宗直 외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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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초 Ⅱ
堂后日記草本 (雲川先祖 經筵奏對 天)
乙卯十一月十二日甲申晴
乙卯十一月十二日甲申晴
吏批  

停常叅 經筵有政,
下直 寧海府使 權泰一, 沃溝縣監 朴永緖,
乙卯十一月十二日吏批, 行判書 韓孝純 病, 參判 柳夢寅 進, 參議 金緻 受由在外, 行都承旨尹, 判書 朴承宗 推鞫廳進, 參判 李冲 繕 修都監進, 參議 慶暹 呈辭受由, 參知 李稶 進, 右副承旨黃 進, 원주
左相引見,
相避 賜几杖  

行都承旨尹, 注 書金 仕,
左承旨金 坐, 一員未差,
右承旨, 假注書金 仕直,
左副承旨韓 坐陞右, 推鞫假注書李 仕,
右副承旨黃 坐陞左副直,
同副承旨任 坐陞右副直,
鄭 未肅拜,
吏批 啓曰, 判書 韓孝純病不來, 叅議 金緻受由在外, 小臣獨政未安敢 禀,
傳曰仍爲之,
吏批 啓曰, 請出寶,傳曰知道,
都令 啓曰, 新除授承旨 鄭廣成, 乃右副承旨黃之女壻也, 在法相避, 何以爲之取 禀,
傳曰知道, 望單字還入,
左令 啓曰, 今日左議政鄭引見事, 前有 傳敎矣, 即者左相 命招乎取 禀,
傳曰依啓,
左副 啓曰, 禁府郞廳來言, 領相 領敦寧, 則當爲來詣, 左右相則皆以病不來云矣,
傳曰知道,
兩司避嫌,
答曰勿辭,
都令 啓曰, 左議政鄭, 聞各該司排設 賜几杖節決不欲承受, 即刻定欲出城云故,
傳曰知道
合 啓, 二賊祕密事新 啓, 李好閔 吳億㱓 李好義 李恒福等事,
答祕密事曰, 已諭不允,
答曰, 已諭不允, 李好閔等事, 徐當發落,
院啓, 獻納處置事,
答曰依啓,
司諫院箚子,
答箚曰, 省箚具悉, 當留念焉,
左副 啓曰, 小臣推鞫廳進去下直, 且請出推案,
傳曰知道,
同副 啓曰, 左相 命招, 已詣 闕下矣,
傳曰知道,
吏曺批下直,
傳曰知道, 今十一月十二日巳時, 太白見於未地, 원주
右副 啓曰, 臺諫出方留門, 請出開門標信,
傳曰知道,

 (25) 조선시대사초 Ⅱ(朝鮮時代史草 Ⅱ) 乙卯十一月二十六日戊戌朝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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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초 Ⅱ
堂后日記草本 (雲川先祖 經筵奏對 天)
乙卯十一月二十六日戊戌朝陰
乙卯十一月二十六日戊戌朝陰
停常叅
經筵有
政,
避嫌 藥房 吏批 受鍼  

行都承旨尹 坐直, 注 書金 仕直,
左承旨 金 病, 一員未差,
右承旨 韓 坐, 假注書徐 仕出去,
左副承旨黃 受由, 推鞫假注書李 病,
右副承旨任 坐直,同副承旨鄭 坐,
右令 啓曰, 憲府專數 避嫌, 以監察爲茶時矣,
傳曰知道,
典設司提調 韓孝純
啓曰, 本司別坐 崔應斗, 以繕修都監監役官, 除本司仕, 請閑官換差事,
傳曰依 啓,
玉堂待罪 啓辭,
傳曰, 勿待罪事, 非關於軍國, 何急之有, 今後如或犯夜, 待翌朝 啓之可矣,
本院問
安,
傳曰知道,
藥房問
安 有草,
答曰知道, 素患齒腫, 更發浮痛, 證勢極重, 今日欲速爲受針矣,
藥房再 啓,
答曰, 此證自前受針有效, 證侯極重, 不得不受針矣, 玉堂箚子, 兩司處置事,
答曰依 啓,
受針後藥房問
安,
答曰知道,
政院問
安,
傳曰知道,
吏批 啓曰, 前應敎 鄭廣敬, 實錄廳校正廳郞廳前佐郞 柳淪, 本曺無相當窠, 干請送西,
傳曰允,
吏批 啓曰, 請出宝,
傳曰知道,
傳于吏批曰, 政事罷,
受針後
右副 啓曰, 藥房提調以下, 出去留門, 請出開門標信,
傳曰知道,

 (26) 조선시대사초 Ⅱ(朝鮮時代史草 Ⅱ)乙卯十一月二十七日己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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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초 Ⅱ
堂后日記草本 (雲川先祖 經筵奏對 天)
乙卯十一月二十七日己亥
乙卯十一月二十七日己亥
停常叅
經筵,
乙卯十一月二十七日吏批, 行判書 韓孝純 進, 參判 柳寅吉 病, 參議 金 緻 在外, 行都承旨尹 進, 원주

 (27) 계암일록 상(溪巖日錄 上) 九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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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암일록 상(溪巖日錄 上)
초록  洪享諸|成渾|韓孝純|伯溫|邊信元|金闓|李廷龜|享諸|趙明立汝順|享諸|享諸|趙漣川|洪監役享五|享諸|享諸|而實|金僉知潁男|鄭守|晋介|而實|李繼善|晋介|曺士强|金士立|士立|會伯|琴正郞彦愼|敏甫|光岳|伯溫|勉甫|會伯|金而和|曺汝益|金汝收|尹東老|金鳴遠, 大成殿|太平舘|成均舘|掌樂院, 察訪|右相|察訪|奉出|察訪|判書|察訪|察訪|察訪|正郞|察訪|正郞|察訪, 巨谷|利川|水耶里|京|靑坡|鑄字洞|觀象監洞|南學洞|平陽  

 (28) 계암일록 상(溪巖日錄 上) 七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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溪巖日錄 二
乙卯
七月
二十七日
晴而陰, 食後省塋回, 歷見平甫兄, 城主以忤 都事, 鄭文振呈辭方伯, 欲遣而多有止之者, 止可也, 尹君今曉還大竹, 夕見全兄書, 吏判 韓孝純出仕, 趙溭拿囚, 將爲省鞫云.

 (29) 계암일록 상(溪巖日錄 上) 正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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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암일록 상
溪巖日錄 三
丁巳
正月
十六日
尹善道䟿草 李泂上䟿論爾瞻 新監司望 吳澐 金涌 權泰一十餘人 聞吳靑松澐  
曉判兄至, 與平甫兄諸人 行王母忌祭, 余病未叅, 心極未安, 食後而實亦至, 尹善道䟿草, 始目擊焉, 我國有人矣, 一脉元氣, 賴是而抉持哉, 爾瞻又上剳發明, 智足以欺天, 言足以飾非, 雖然其行事之實, 有不可掩者, 何異乎以一指蔽泰山乎, 欺明之罪, 上通于天, 可勝言哉, 政院 玉堂 兩司啓剳, 亦皆傳觀, 政院則韓纉男 任就正輩也, 兩司大憲 南瑾, 執義金質幹, 掌令 鄭道林健, 持平 洪堯儉 南宮擏, 大諫 鄭造, 司諫 吳汝檼, 獻納 柳汝恪, 正言 韓暿, 玉堂 校理 姜繗 吳汝橃, 副校理 任性之 鄭遵, 修撰 柳鞾, 副修撰 黃德符, 正字 南溟羽 趙裕善輩也, 以討逆護逆, 爲褒爾瞻罪他人題目 , 而以忠孝淸白操行節義, 頌爾瞻斥完平, 溪陰一松謂邪黨, 而請寘善道於重罪, 他餘輩不足道, 景虛亦至, 於此自分已決其歸矣, 可歎, 上以善道事, 命議于大臣, 領相 奇自獻, 稱病不出, 右相 韓孝純以爲, 言路莫大之事, 不敢輕易獻議, 夫自獻之爲人, 陰沉凶譎, 鄙夫之尤者也, 去秋謁聖之試, 其子若姪, 以預題宿構, 聯中二名, 自已爲試官, 與爾瞻同謀取之, 尹之䟿中, 歷擧爾瞻科擧行私之狀, 其於謁聖預題之事, 尤極備悉, 則自獻之愧憾如何, 其不預於收議固也, 韓 之爲吏判也, 禀令於權臣, 受制於悍妻, 行已鄙陋, 無一可道, 而今之獻議, 雖不能明言善道之忠正, 其有不可罪之意, 隱然在於言外, 亦可喜也, 以此被政院 兩司之論, 於渠榮也, 豊基 南自新, 榮川 李光啓等, 爭上䟿請罪尹君, 而京人李泂, 又上䟿論爾瞻專權擅國, 宗室錦山君 龜川君以下十九人, 又上䟿極論爾瞻權奸縱恣, 批答, 宗室諸戚, 不干朝廷事軆, 受何人指嗾, 而爲此䟿乎, 天日在上, 直指以對, 都承旨 韓纉男, 亦被斥於李泂䟿中, 上剳發明, 極爲可笑, 尹善道 絶塞安置, 以龜川君請罪事, 臺諫論啓不已, 南自新者, 目不知書, 愚騃麁鄙, 不足數人類中, 與徐兟一般物也, 初付奇, 復謟爾瞻, 爲靑松訓導, 歲前以廢大妃事, 懷䟿上京, 比至其類有止之者, 遂不果乃呈足䟿, 廢大妃䟿, 榮川 金汝煜所製也, 金之兄弟, 皆付時輩, 欲圖利達者矣.

 (30) 계암일록 상(溪巖日錄 上) 三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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溪巖日錄 三(계암일록 3)
丁巳
三月
一日
晴, 朝行朔薦.
二日
晴, 午行先親節祭, 偰及世兒執事, 是日淸明節.
三日
見孝仲 季華書, 十五日約會 欲徃玉淵  晴而風, 午薦蒿餠行酌禮, 夕平甫兄及而實持壺至, 余亦命酒, 裴君及墋亦與焉, 今春非但節晩, 且因日氣寒冷, 花事遲退, 衆芳之發, 必在望後念間矣, 得見朝報, 大朔之勢, 如水如火, 深益深熱益熱, 尙何言哉, 尹善道定配慶源, 元以坤 李克健 李泂 安愼言皆徒極邊, 臺啓則以圍籬請也, 又謂朴弘道與錦山君, 作詩湖堂, 以慶運宮爲題, 攻之極力, 請罪不已, 猶未蒙允, 而錦山君 南海安置, 龜川君削職, 臺諫並請安置, 而上未許也, 盖弘道本大北, 中道背之, 以是其黨, 疾之入骨, 以弘道爲作詩, 謄書入啓, 許筠又上䟿, 證其的然, 筠, 弘道之妻叔也, 筠付爾瞻, 表裏爲奸, 小人之小人也, 李光啓又上䟿請罪言事者, 而賛訟權奸趙洽 李溟, 相繼而䟿攻奇自獻, 光啓乃榮川一賦陋人也, 乃敢如此, 乘時之勢, 顧不畏哉, 其他上䟿輩寔繁, 有徒不可盡記, 右相 韓孝純, 尙不就職, 領相 奇自獻, 自江原復入都, 去來無定, 亦何所爲心也, 韓纉男之子暿爲正言, 以李泂䟿斥, 上啓發明, 尤爲可笑, 趙希逸亦爲時輩所嫉, 竄邊地, 前冬別試, 去二月十四日, 始唱榜云, 錦山 龜川, 以宗室不忍權奸之覆國, 上章呌天, 宜見陷之深也, 錦山名誠胤, 龜川名粹也, 是日聞琴奉事憬, 差文廟碑監造官, 汲汲向京.

 (30) 계암일록 상(溪巖日錄 上) 正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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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金坽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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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암일록 상
溪巖日錄 三
戊午
正月
三十日
陰, 朝酌一二盃, 食後孝仲歸墋來, 余向榮川, 行十里許, 大雪漫漫, 終日霑濕, 至郡內吊權子與兄弟, 子與內艱纔畢, 又遭外艱矣, 暫過朴子常, 兼遇金善源兄弟, 乘暮抵泰之兄家入內話, 鷄已鳴而寢, 子與兄弟, 頗談草頭輩橫恣之事, 前月十六, 李榮久慶宴, 子常 仲植 季直皆徃云, 廷請自初四日爲之, 韓孝純爲首.

 (31) 계암일록 상(溪巖日錄 上) 二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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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암일록 상
溪巖日錄 三
戊午
二月

十八日
安東判官 任羲之呈辭  
風寒, 食後金時亮來見, 李子逸送朝報云云, 諸事不忍見. 丁巳十二月十一日凶䟿類 幼學朴夢俊䟿, 處置西宮事. ○副提學 李好信, 以大論時兩端, 觀望被駁. ○幼學李國獻䟿, 西宮不軓之罪, 以春秋胡氏之論快決事, 右相不爲廷請, 三司玩愒, 先治其罪事. ○答合司曰, 獻議中, 或有全恩者, 或有掠美者, 或有稱病, 或有糢糊, 或有推諉, 此輩不可盡治也, 休煩可矣. ○鄭弘翼 珍島, 金德諴 南海定配, 其後鄭吉州, 金明言改定. ○訓練習讀李彦弼䟿. ○答玉堂箚, 右袒侮弄, 其可盡繩以忘君負國之罪乎, 自獻等, 已爲酌處矣. ○漆原縣監 權省吾, 馳報盧克諴凶書事. ○吏文學官李長培䟿. ○禮曺佐郞 柳瀹䟿, 大槩收議失當, 惶恐待罪事. ○行司果 鄭振哲 田潤等䟿, 亟去禍本事.○永興正敬一䟿, 請令獻議事. ○江原道儒生朴弘益䟿, 請亟誅二凶奇相事. ○全羅道生員李 䟿, 大論未完, 邪議日滋, 湖嶺妖儒, 將陳脅君之䟿, 請亟定奇李之律事. ○西部叅奉 金 䟿, 亟從公論事. ○崔瓘無足見. ○答柳瀹䟿曰, 昔在戊申, 鄭述首倡全恩之說, 掠取美名, 使君上無所施恩之地, 以亂國是, 至今靡定, 人心板蕩, 國勢艱危, 橫議之有害於人國家, 乃如是也, 今後愼之, 無自陷於不忠不義之罪也. ○生員辛敬業等䟿. ○答右相 韓孝純剳曰, 明大義定國是安杜稷立朝綱, 卿雖年老, 足以當爲, 予深有望於卿, 卿其更篤忠貞, 以副予春注. ○新生員李榮久等䟿, 謝恩時不敢拜西宮者, 不敢屈膝於讎廷也. ○廣州幼學金汝楷䟿, 嚴守西宮, 以備外應, 且告天朝, 正事正名, 使無佗日尹彛 李初之變, 自獻以下, 護衛西宮, 並皆依律定罪事. ○朴弘益 崔尙質等凶䟿答曰省䟿, 用嘉爲國之誠. ○光陵參奉 柳楗等凶䟿. ○奇相朔州, 鰲城 昌城, 鄭翼之 鐘城, 金德諴 穩城, 又奇吉州, 李北靑. ○李慶涵以定配擇便被論. ○行司果 李汝諧䟿, 速定大計事. ○幼學韓輔吉䟿, 請速行大事, 奇自獻定配地連上國, 必有潜通惹起之患, 禁府堂上徇私滅公之罪. ○平安道幼學康皞如䟿, 今日之勢, 與大舜側微時不同, 請斬唱爲母子之說, 妄引虞舜之事, 脅制君父者. ○幼學李國光 李國獻等䟿, 大臣之懷二, 桀犬之吠堯, 皆由禍本之未除也, 大論未完, 禍迫朝夕, 請勿留難法, 春秋之大義, 依胡氏之定論, 當斷快斷, 以安宗社, 近者三司, 只憑草野正論, 只討四凶, 而語不及於定大計, 其論亦且中止, 幸賴一二社稷之臣, 明大義扶宗社, 靡一二臣之忠憤義烈, 則社稷其爲社稷乎, 伏願進忠烈之賢, 則宗社福矣, 且閔希謇追施典刑事. ○平安評事 崔有海被駁. ○前訓導 金大河䟿, 請治奇俊格誣餙呈䟿, 以害大功之罪事. ○進士崔光弼䟿, 正論中止, 奸黨生心, 主上益孤, 李覮以憲長自稱主張大論, 不惟不爲廢出之議, 貶削之擧, 亦不擔當, 請治三司不忠之罪, 速處西宮, 俾絶凶黨屬望之心. ○幼學李榘等䟿, 亟二凶, 直加廢出於西宮事. ○幼學金尙鍵等䟿, 請廢西宮事. ○正月一日, 幼學崔淑䟿, 李覮弘老之腹心也, 汲汲停啓, 四兇終不發廢退之論, 請先誅覮, 次治三司不發廢出之議之罪, 直廢四宮, 以謝天子事. ○二日幼學鄭之問䟿, 速將西宮, 數罪於太廟, 直加廢出事. ○合啓大論遲延, 結局無期, 請令廟堂, 依崔光弼等之䟿. ○廣州幼學洪德民䟿, 請亟斬四兇, 以定大事. ○館學儒生閔 等䟿, 亟行廢出之典, 以安宗社. ○初四日廷請, 百官啓辭, 西宮十罪, 宗室啓辭. ○答百官啓曰, 天乎予有何罪, 而降割之酷, 一至此極, 寧欲脫屣人間, 掉臂長徃, 遵海而處, 以終餘年也. ○監察 趙亨男等䟿. ○百官啓, 捧入於西更傳敎云云. ○館學儒生閔 等七䟿. ○許筠請與奇俊格對辨, 請與李覮對辨. ○韓纉男啓辭, 陰城居納粟叅奉任厥稱名人, 持諺書一卷. ○幼學薛求仁等䟿, 請先斬李覮, 仍將西宮, 數罪於太廟, 如致堂之論. ○前訓導 金大河䟿, 西宮罪惡, 貫盈天地, 無從廢出, 直加亟永絶禍根, 以安宗社. ○舘儒河仁俊等, 姑從輕典, 直廢西宮, 一以慰宗社, 一以謝天子, 上答天心, 下須輿望事. ○幼學尹魯䟿. ○進士河仁俊 閔 鄭淇 金尙夏等䟿, 元簋處所, 得凶書中, 有臣等四人姓名及李爾瞻 金質幹 許筠 徐國楨等姓名. ○舘儒李綎等䟿, 請姑從寬典, 亟行廢出事. ○幼學金允謙䟿, 請先斬金權 李愼儀右祖之罪, 黃德符主張全恩忘讎護逆之罪, 速擧西宮廢出之典. ○李綎等又䟿請廢出事. ○金尙鍵又䟿請廢出事. ○幼學金椓䟿請究問許筠事. ○二月初二日, 答百官啓曰, 予多險釁, 不吊于天, 遭此大變, 日夜號泣, 戕害眇躬, 不足尤也, 行凶裕陵, 咀呪先后, 此實臣子不忍言之至痛, 卿等盈庭之□□迫促姑停百官之朝謁, 此亦出於不得已也, 豈寡昧之本情哉, 不圖卿等, 不察予意, 蕫率羣工畢會, □□亦不得一向拒絶, 今後稱西宮, 而去大妃之號, 勿復以廢字擧論, 使恩義兩絶, 凡供奉减損節目, 一一詳察擧行. ○幼學朴時俊䟿, 都堂會議時, 李慶全來而遁去, 公主降號之
議, 大憲 柳澗, 又欲爲翁主, 請先誅二人, 次治收議右袒, 置不叅廷請之罪, 仍令廟堂, 降公主爲庶人, 亟奏天朝, 以訖廢黜之典事.

 (32) 계암일록 상(溪巖日錄 上) 七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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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金坽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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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암일록 상
溪巖日錄 三
戊午
七月
二十日
陰, 旬間偰也來此, 仍留是夕, 榮人來夜大雨, 趙挺復爲吏判, 領相 仁弘臥其家, 左相 韓孝純遞, 右相 朴承宗起復不出, 朝廷無一相, 新監司 朴慶新到界.

 (33) 계일헌일기(戒逸軒日記) 二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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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李命龍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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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일헌일기(戒逸軒日記)
庚辰
二月

十七日
陵洞南人吳貞吉建院 黃喜  
至午後主人不能擧火, 徃見吳得良, 房喆謨而歸來主人家, 則朝飯因已過, 又出見壺洞 李鼎輔 判書及鄭士巽, 而金彝叔適來此, 同入泮, 彝叔路出二分, 買松餠四介, 泡小許而食, 來李鼎輔家, 韓宗鑽 政丞 韓孝純之子孫也 원주 來, 共㥘去耳, 老論逆李天紀·金龍澤, 今上怒談, 燕山登極後, 景福宮犢者入哭, 問曰渠何者耶 犢失母哭也, 煥然大覺, 其母有血書, 心固失情, 因爲大臣妻行欲, 而飛風一作, 朴元宗之妻善要奔, 李將軍之妻, 南原黃家宅, 其舅姑夫病, 血貧欲飢死, 一日大價行奔得財, 救病生活, 後出是言, 請死, 其夫不聽, 偕居是非相反, 成州李進士女, 成婚十餘日, 松道木價, 知其一邑之行賄, 其南人也, 陵洞南人吳貞吉建院, 以校書正字行時, 辟人曰, 此母伊示, 則其女答曰, 此世有母云, 時値廢大母, 因覺退其奴樣, 一日進士曰, 因熱居外亭閣, 出觀遊其奴樣, 請小宅人負, 善其言以從, 使千里驢三中立直, 丈松上其宅面觸, 欲死流血滿面, 不得其價, 欲合終不聽, 至松上終不聽, 其價則方從願, 願爲酒價, 因給錢爲酒價矣, 一宅其子道死, 因刳腹自死, 曰吾之腹中有如此凶計乎, 其節何如, 而終不聽, 合每待成州人矣, 偶逢成州人還歸, 而斬其價頭, 雪恥其宅, 夫尙不娶, 其妻相語, 因托後娶, 南彦觀·南彦彧通情獻納, 吾雖無罪, 其夫少無異意, 一依欲行夫婦禮, 而其妻自爲居外三年, 不潔因死, 是節也, 吳時裕夜來話而去.

 (34) 우곡일기(愚谷日記) 四月, 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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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李惟侃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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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곡일기
愚谷日記
愚谷日記 乙卯日課
四月, 小
二十六日
晴, 書房溫堗, 令玉男沙壁爲之. 昨政, 吏判議薦朴弘耉·柳希奮·韓孝純·朴承宗·李爾瞻·吳億岭·朴楗. 傳曰今日日暮, 吏判望, 幷問于右相相議, 後政差出. 郭夢得·朴恕仲·申茂伯·景卨飮三鍾, 皆醉落, 吾獨不臥. 李景則來見. 趙景禛來見. 叔母下歸.

 (35) 우곡일기(愚谷日記) 七月, 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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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李惟侃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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愚谷日記
愚谷日記 乙卯日課
七月, 小
初一日
陰, 洒雨, 無一番快雨之時, 而日氣有同霾雨. 尙重·恕仲·夢得會話.
初二日
陰, 朝與尙重往見彦明. 吾二馬以進獻被捉, 可笑. 食後往晉昌家消日, 日暮還家, 則都事書來傳營人爲來云, 驄冠亦來.
初三日
陰, 牛峰邸人告歸, 昨書所答及冠見樣, 以付此人. 今日榜會, 不得往參. 夢得·恕仲·尙重來話. 吳同知請之, 夢得輩點心後臨夕去後往赴, 今日吳䎘初度也. 德基父子·愼天翊來. 點心前聞鳴吉訃, 驚悼不已. 小小盃七八巡飮之. 而猶省飮, 故到家無酒氣. 主簿上直.
初四日
陰, 昨政, 吏判 韓孝純爲之. 夢得·尙重 擇精來話, 點心後日仄各散. 益卿追至, 夕食後歸.
初五日
晴, 往晉昌家, 夢得·恕仲追至, 亨吉亦到. 日仄步來, 海州營人受答於今日, 仁王洞馬牽去. 鳴吉死於熱病, 不得往見, 令卨書吊狀, 送白紙二卷, 護喪沈演爲答.
初六日
古阜本家逢賊 趙稷以上疏拿囚 吏判 韓孝純辭免上疏 宋渾元爲戶判  

晴, 朝食後聞趙稢訃音, 可憐. 自午小雨, 此時望雨, 如五六月之旱也. 往尙重家, 恕仲·夢得·亨吉·景昇來會, 祈雨錚錚之聲不絶, 天之不雨, 無乃以此之故耶. 都事問安人初二日出, 今昏來傳, 初二日向文化五六日間, 當還營云耳.
初七日
陰, 問安人受答於早食後. 去夜古阜本家逢賊. 金守濂來見. 夢得·恕仲·尙重來話, 安汝訥·閔伏龍來見. 自午後或雨或晴, 最晩往見晉昌, 招尙重與晉昌·晉寧, 携手到尙重家盃話而罷. 晉寧以謝恩副使上疏改免.
初八日
或陰或陽. 夢得·恕仲·尙重來話. 尙重賊奴捉之. 臨夕往見晉昌. 趙稷以上疏拿囚, 趙守倫四寸云.
初九日
晴, 吏判 韓孝純三度呈辭, 加給由後辭免上疏, 人惟求舊老成優答, 今日謝恩而出. 朴彛叙伸理寃獄, 金時言·李溟·鄭復亨書啓事, 憲府以削去仕版論啓, 以過重答之. 今日政, 判書牌招以參. 洪擇精爲仁卿入番設酌, 吾與恕仲·夢得請歸, 吾先來出宿于舍廊.

 (36) 우곡일기(愚谷日記) 十二月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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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李惟侃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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愚谷日記
愚谷公親筆丁巳日課
十二月小

初四日
幼學朴極上疏 館儒生哭論上疏 景夏以前母忌出來  
晴, 鄭文振上疏, 大槩, 定是非, 明公論, 先斬自獻之頭, 次斬群奸護逆, 西宮尊號, 侍衛封進事, 凾命減撤事, 入啓. 黃廷弼上疏, 大槩, 請以春秋之義, 護逆之黨, 奇自獻·韓孝純·金世濂·李恒福·朴弘耉·閔馨男·鄭弘翼等, 請從三司之請, 以安宗社
事.幼學朴極上疏, 大槩, 收議時異議人等重罪, 以定國是, 以安宗社事. 朝食後下雪. 仁卿·文卿越來, 醉罷. 右相 韓孝純出仕, 五部坊民·市民通事, 皆聚會闕門外, 通事上疏, 以婚事, 此朝送書于李星男, 則金季男訃音來傳, 未得爲答云耳.

 (37) 우곡일기(愚谷日記)  正月, 大  

      상위서지 : 우곡일기(愚谷日記) > 愚谷日記 > 愚谷日記戊午日課
      저자 : 李惟侃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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愚谷日記
愚谷日記戊午日課
正月, 大
十二月, 晝二刻加, 正月, 五刻加 원주 .

十二日
韓孝純請鞫許筠 奇自獻 都目政  
雪, 晩則晴. 往見晉昌, 日漸差快, 可喜. 朴鮐賢到延陵家, 送人馬邀請. 正郎亦招之, 病不能往. 吾獨往, 大醉而還. 昨政, 大憲 柳澗爲之.
十三日
晴, 食後往晉昌家, 醉於文卿家.
十四日
晴, 安玏令公邀請, 與文卿幷轡醉還. 安璥往來江南, 始見於今日. 胸左邊, 喘息呼吸皆牽痛, 今過六七日.
十五日
晴, 與夢得見仁卿, 日漸向蘇, 可喜. 文卿家飮, 越來尙重家, 見履一着冠帶習禮後, 文卿·夢得到吾家, 酒四行起去. 全城君自積城入來云.
十六日
下雪, 沈翼世率新郞, 向金溝時來見. 十一日曉頭, 金溝問安人出, 今日早早朝來到. 至今不得起立, 胸中沓沓之證一樣. 病差之後, 則日漸蘇復, 而證勢如此, 雖幸而免死, 必爲病廢之人, 悶慮罔涯. 金溝人卽受答而歸. 德孫·生伊·金伊, 歸金溝. 谷山 李尙安. 午後大風, 未末許雪, 雪晴風殘, 終日入臥. 右相 韓孝純, 率二品以上, 請鞫許筠·奇自獻.
十七日
晴, 食後往仁卿家, 纔入門, 見仁卿起步房中, 不覺喜喜. 正郎往見金克孝氏, 不至不省人事, 且飮藥酒云, 若有熱氣, 則藥酒且不可飮也. 都目政今日爲之, 李廷益爲礪山. 昨日爲始議政率二品以上, 請鞫許筠·奇俊格, 盤松金仁鏡子金倬稱名者上疏, 故仍此爲之云. 報恩 沈俠.

 (38) 우곡일기(愚谷日記) 六月, 小,

      상위서지 : 우곡일기(愚谷日記) > 愚谷日記 > 愚谷日記戊午日課
      저자 : 李惟侃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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愚谷日記
愚谷日記戊午日課
六月, 小,
初一日
晴, 與亨吉, 往晉昌家消遣, 尙重亦往, 盧石城持酒來, 吾氣不平, 將撤飮二盃. 平評宋邦祚, 去月二十五到車輦, 身死狀啓入來.
初二日
晴, 見胡書, 上國數罪, 痛惋痛惋. 備局昨日會坐, 聖節使 朴鼎吉, 以陳奏使送之, 聖節使特命尹暉爲之. 備邊堂上, 金鎧·任袞·朴自興·尹暉, 特命爲之. 此四人, 上國徵兵不送事獻議者也. 德孫輩自平山, 昨午入來. 亨吉·尙重, 來話終日. 閔聖之歸太生家時入見, 中學一會云. 左相 韓孝純遠竄事入啓, 收議右袒者, 廷請不參者, 遠竄啓, 靜攝之中, 勿爲煩論. 鰲城啓辭, 答曰, 扶護西宮者, 豈獨某人哉, 勿爲煩論. 李郞出來.

 (39) 야언기략(野言記略) 野言記略卷之二

       상위서지 : 야언기략(野言記略) > 野言記略 > 野言記略卷之二
       저자 : 吳淵      날짜:
       분류 : 고도서 > 사부(史部) > 잡사류(雜史類)

野言記略
野言記略卷之二

十五日
日食. ○遣禁府都事 李惟馨于江華, 賜廢世子死. ○令下三道, 大發兵赴西, 各萬餘名. ○先是, 廢世子跳出事, 發鄭蘊連柱按律之論. ○八道設增廣科, 各道考官, 舊習猶存, 一無公道, 事聞命治, 甚者本道京試官李忔囚鞫累朔, 會試出榜後還罷. ○遣陪臣李慶全·尹暄等齎大妃奏聞, 請封具由反正實狀. ○徐拜 刑判論斥故相韓孝純黨奸, 廢母之罪

 (40) 매천야록『梅泉野錄』 제1권

上(1894년 이전) ③
9. 대원군의 몰락과 남인의 도태
최익현이 상소한 후 종전에 追奪되었던 陸來善, 韓孝純, 李玄逸 등이 복직되고, 청나라의 小錢이 폐지되었다. 이것은 모두 상소문 내용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갑술년(1874) 봄에 운현궁에서 나온 대원군은 楊州의 直洞으로 내려갔으나 고종의 恩禮는 매우 인색하였다. 이에 閔升鎬가 집권하여 淸班에 있는 남인들을 완전히 도태시켰다.
어사들을 파견하여 남인, 북인 및 대원군의 賓客으로 있다가 수령이 된 사람의 파직을 거론하여 이들이 거의 다 사직하였다. 이때부터 남인들도 더욱 쇠퇴하여 어머니를 잃은 듯이 실의에 빠지게 되었다. 이에 성균관 유생들과 팔도 유생들은 서로 줄을 이어 대궐문 앞에서 규탄과 원망을 하였지만 고종은 이들마저 모두 물리쳤다.
그 후 7월에 영남의 柳道奭과 호남의 曺炳萬 등이 상소를 하자, 고종은 크게 노하여 이 두 사람을 포도청에 가두도록 하였다. 그들을 곧 처형하려고 할 때, 대원군은 直洞에서 곧바로 대궐로 향하여 격렬하게 진언하면서 자결을 하려 하였다. 이에 고종은 부득이 그들을 석방하고, 승정원에 명을 내려 대원군에게 관계된 상소 일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하므로 결국 호소하는 사람들이 모두 끊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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