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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한씨장헌공파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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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헌공 전기발간 고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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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랑합니다 댓글 0건 조회 9,661회 작성일 16-12-01 21:37

본문

" 월탄 한효순 이야기 ... 나라에 사람이 있구나 "
전기발간에 따라 2016년 12월 2일 묘전에서 다수의 종인이 모여 고유제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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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헌공 평전 고유제 헌관 기선 회장, 봉헌축 기송 수호이사, 사회 기선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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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복 한영우 교수 우측에서 두번째 축관 기송 이사가 건네주고 있다.
 

o 일시 : 2016.12.02.10:50
o 장소 : 서현동 묘전
o 헌관 : 기선 종친회장
o 봉헌축 : 기송 수호이사
o 고유문 낭독 : 기선회장
o 사회 : 기선 총무이사
=== 장헌공 전기발간 봉헌축 ===
莊獻公 傳記發刊 奉獻 祝 二0一六.十二月.二日

維歲次 丙申 十二月 二日.十三代孫 莊獻公宗親會長 基宣 敢昭告于
顯 十三代 祖考
效忠仗義迪毅協力宣武功臣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左議政 兼-領 經筵事監 春秋館事 世子傅
四道體察使 舟師大將 兼-監鐵粮餉 總管使
西興府院君 號-月灘, 諡-莊獻 府君
顯 十三代 祖妣 貞敬夫人-順興安氏
顯 十三代 祖妣 貞敬夫人-晉州姜氏 之墓 稽顙虔告
素望祈願 莊獻公 先祖 偉人傳記 是正執筆
今爲 서울大學校 碩座敎授 十二代孫-永愚 出版 墓前 奉獻
韓國歷史 再-照明 方向提示.莊獻公後孫 感銘 永遠無窮 顯揚
謹以 尊禮 酒果 奠獻 尙


장헌공 전기발간 봉헌 축문
세월이 바뀌어 병신년 十二월 二일 十三대손 장헌공종친회장 기선은 감히 고하나이다.
十三대조 할아버지께서는
-충성을 다하여 의로움을 따라 엄숙히 행하시고, 힘을 합하여 도운 “선무공신”이요
-품계는 녹을 최고로 높혀 받으신 “숭록대부”요
-내직으로는 의정부 “좌의정”이요,역사관의 감사이시며, 세자의 스승이셨습니다.
-외직으로는 비상시 四도 병력을 통솔하시고 모든 선박을 관리 운행하시며, 군수품 보급을
총괄하셨습니다.
-관작은 “서흥부원군”시며. 호는 월탄이요, 시호-“장헌”이신 할아버지와
十三대조 정경부인 순흥안씨 할머니
十三대조 정경부인 진주강씨 할머니 묘전에 머리숙여 아뢰나이다.
그동안 바라고 원하던 장헌공할아버지 일생의 공적을 바르게 기록한 역사책이
이번에 서울대학교 석좌교수이며 十二대손 영우가 집필-완성하여 출판되었기에 봉헌하옵나이다.
-이책은 한국역사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우리 후손들에게는 깊은 감명과 함께 영원무궁토록
현양하고자 하나이다.
이에 예를 갖추어 주과를 올리오니 흠향하소서

=== 고유문 (告由文) ===
오늘 저희들은 할아버님의 혼유석 위에 책 한 권을 올립니다. 이 책은 이 자리에 모인 여러 후손들이 정성을 모아 만든 책입니다. 이 책 속에는 할아버님께서 일생을 통하여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이룩하신 빛나는 사업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할아버님께서는 임진왜란을 맞이하여 영해부사와 경상도 관찰사, 전라도 관찰사, 삼남 도체찰부사, 호서호남 염철양향총관사로 복무하시면서 경상도지역의 왜적을 막아내어 큰 길을 다시 열어 놓았으며, 이순신장군이 빛나는 승첩을 거둘 수 있도록 군량과 전선, 무기, 수군을 지원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임금과 신하, 그리고 백성들이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아 <나라에 사람이 있다>고 찬탄하고 경애했습니다.
왜란이 끝난 뒤에도 쉴 틈도 없이 평안도와 함경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여진족의 침략을 막는 일에 혼신을 다 하셨습니다. 특히 함경도 관찰사로 계실 때에는 <<신기비결>>과 <<진설>>이라는 병서를 써서 무기를 개량하고 군사들을 정예화하는 일에 큰 업적을 내셨습니다.
광해군 시절에는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내시면서 인목대비의 목숨을 구하고, 깨끗한 선비들을 구하고, 사랑하는 조카[준겸]를 구하기 위해 갖은 수모를 감내하면서 이이첨일파와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인목대비가 비록 대비의 지위는 잃었지만 목숨을 구하고 끝까지 서궁에 살아남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할아버지의 힘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조반정을 일으킨 서인들은 할아버지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삭탈관직이라는 가당치 않은 벌을 내렸습니다. 이는 할아버지께서 당색이 다른 남인이라는 것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씌운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후손들은 300년간 할아버지의 누명을 벗기려고 피나는 노력을 벌였으나, 당색이 다른 집권층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1908년에 가서 관작이 회복되었지만, 나라가 다 망한 시절에 벗은 누명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할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실 때 눈을 감을 수 없다고 한탄하셨고, 후손들도 400년간 멍든 가슴을 안고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할아버님께서 돌아가신지 395년이 되는 오늘에 이르러 이 책을 올리게 된 것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할아버님께서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는 날이 되었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후손들도 이제는 가슴을 펴고 만인들 앞에서 할아버지를 더욱 자랑스런 조상이자 모든 한국인의 위인으로 떠받들 수 있는 세상이 왔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마도 시간이 흐를수록 할아버님의 존함은 온세상에 널리 퍼져 나갈 것입니다.
앞으로 저희 후손들은 할아버님의 빛나는 유업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조상님 앞에 부끄러운 후손이 되지 않도록 더욱 분발하고 노력하겠습니다.

                                                                   2016년 12월 2일
                                                                    후손 일동 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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